2014-11-11.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전도자는 이어서 고독의 폐해와 권력의 무상을 본다.

성경본문. 전도서 4:7-16
한글본문.
7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8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9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13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14그는 자기의 나라에서 가난하게 태어났을지라도 감옥에서 나와 왕이 되었음이니라 15내가 본즉 해 아래에서 다니는 인생들이 왕의 다음 자리에 있다가 왕을 대신하여 일어난 젊은이와 함께 있고 16그의 치리를 받는 모든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지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영어본문.
7 Again I saw something meaningless under the sun: 8 There was a man all alone; he had neither son nor brother. There was no end to his toil, yet his eyes were not content with his wealth. “For whom am I toiling,” he asked, “and why am I depriving myself of enjoyment?” This too is meaningless– a miserable business! 9 Two are better than one, because they have a good return for their work: 10 If one falls down, his friend can help him up. But pity the man who falls and has no one to help him up! 11 Also, if two lie down together, they will keep warm. But how can one keep warm alone? 12 Though one may be overpowered, two can defend themselves. A cord of three strands is not quickly broken. 13 Better a poor but wise youth than an old but foolish king who no longer knows how to take warning. 14 The youth may have come from prison to the kingship, or he may have been born in poverty within his kingdom. 15 I saw that all who lived and walked under the sun followed the youth, the king’s successor. 16 There was no end to all the people who were before them. But those who came later were not pleased with the successor. This too is meaningless, a chasing after the wind.

도움말.
이르기를 내가…(8절). 그런 사람은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아무 즐거움도 모르고 이 고생을 했는가?” 하게 될 테니 이 또한 헛된 일이라, 보기에도 딱한 노릇이다.(공동번역)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9절).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새번역)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길 원하시는가(10-12절)?
⬇ 아래로 인간. 우리 삶에 동반자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10-12절)?
? 물어봐. 권력과 인기의 무상함은 어떻게 잘 표현되고 있는가(15-16절)?
! 느껴봐.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적절한 균형을 잘 유지하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가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늘 하나님과 동행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Meditation. 하나님과 동행하라.
가족 간의 유대관계마저 포기한 채, 더 많은 것을 얻고자 일중독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은 머지않아 지독한 회의에 빠지고 말 것이다. 전도자는 인생을 멀고도 험한 여행길에 비유하여 넘어질 땐 붙들어 일으켜주고, 서로의 체온으로 추운 밤을 견디게 하며, 강도를 만나면 함께 싸워줄 동반자가 필요함을 강조한다(10-12절).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는 큰 고통을 주기도 하지만, 혼자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유익과 행복을 주기도 한다.
전도자는 가난했고 옥에 갇히기까지 했던 한 소년이 뛰어난 지혜로 이를 다 극복하고 늙고 둔한 왕을 제치고 극적으로 왕위에 오른 것을 보았다(13-16절). 그 젊은 왕은 백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민심은 금방 변한다. 그 역시 곧 있으면 또 다른 늙고 둔한 왕이 되어 다음 세대는 그를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지만, 전적으로 의지해서도 안 되는 것은 언제든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갈길 다 가도록 변치 않는 진정한 동반자는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당신은 깨닫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11-10. QT큐티체조.

간단설명. 법정에서 행해지는 악을 관찰했던 전도자는 이어서 학대받는 사람들의 눈물을 보며 지나친 욕심의 헛됨을 본다.

성경본문. 전도서 4:1-6
한글본문.
1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2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3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4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5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6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영어본문.
1 Again I looked and saw all the oppression that was taking place under the sun: I saw the tears of the oppressed– and they have no comforter; power was on the side of their oppressors– and they have no comforter. 2 And I declared that the dead, who had already died, are happier than the living, who are still alive. 3 But better than both is he who has not yet been, who has not seen the evil that is done under the sun. 4 And I saw that all labor and all achievement spring from man’s envy of his neighbor. This too is meaningless, a chasing after the wind. 5 The fool folds his hands and ruins himself. 6 Better one handful with tranquillity than two handfuls with toil and chasing after the wind.

도움말.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5절). 우매자의 게으름은 자기 파멸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이 주신 분복에 만족하며 사는 삶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가(6절)?
⬇ 아래로 인간. 재주가 많고 부지런하지만 욕심이 과하면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되는가(4절)?
? 물어봐. 학대당하는 사람들의 불행은 어떻게 강조되고 있는가(2-3절)?
! 느껴봐. 내가 지나치게 과욕을 부리고 있는 일은 없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 자신만이 아니라 내 주변의 더 어려운 사람을 돌아봐야 할 일은 없는가?

Meditation. 한 손만 채우고 한 손은 비우라.
전도자는 권세자들에 의해 학대당하는 힘없는 백성들의 눈물을 본다. 눈물을 닦아 줄 위로자조차 없는 그들의 가혹한 현실은 그들보다는 차라리 죽은 사람이 더 낫고, 유산된 사람이 오히려 더 낫다는 탄식을 부른다(1-3절).
이어서 학대의 문제에서 욕심의 문제로 주제를 옮긴다(4-6절). 사람은 타인을 혹사시켜도 안 되지만, 자신을 혹사시켜도 안 된다. 지나친 욕심에 사로잡혀 두 손 가득 가지려고 동분서주하다가 이웃들의 시기를 받으며 불행하고 외롭게 사는 것은 좋지 않다. 그렇다고 게을러서 팔짱만 낀 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두 손이 모두 비어 자멸하고 만다. 참된 행복은 적절한 균형이 유지되는 곳에 있다. 두 손이 모두 가득하려고 해도 안 되고, 두 손이 모두 비어도 안 된다. 한 손에만 가득하게 하고 평온한 삶을 사는 것이 좋다. 나머지 한 손의 것은 가난한 이웃과 나누고 비어 있는 그 손으로 그들의 눈물을 닦아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과욕을 부리지 말고 적절한 선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은 없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11-09. 주일에는 읽는 QT. 습관의 법칙 2.

간단설명. 좋은 습관을 얻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을 하루에 두 가지씩만 행하라.-존 맥스웰

한글본문.
히브리서 11:1-6
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4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5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1 Now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and certain of what we do not see. 2 This is what the ancients were commended for. 3 By faith we understand that the universe was formed at God’s command, so that what is seen was not made out of what was visible. 4 By faith Abel offered God a better sacrifice than Cain did. By faith he was commended as a righteous man, when God spoke well of his offerings. And by faith he still speaks, even though he is dead. 5 By faith Enoch was taken from this life, so that he did not experience death; he could not be found, because God had taken him away. For before he was taken, he was commended as one who pleased God. 6 And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God, because anyone who comes to him must believe that he exists and that he rewards those who earnestly seek him.

Meditation. 믿음으로 행동하십시오.
Act as if…
사람의 행동은 이성과 감정을 거쳐서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자연법일 뿐 그리스도인이 매이고 붙들려야 할 믿음의 법칙은 아닙니다. 이성을 따르고 감정의 눈치를 살펴서는 하늘에 속한 새 사람의 습관을 이룰 수 없습니다.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은 합리와 생리와 심리에 묶이지 않습니다.

이 땅에 발을 디뎠어도 하늘을 바라보며 호흡하고 살았던 믿음의 열조들은 한결같이 다른 법칙에 붙잡혀 있었습니다(6절). 그들은 오직 믿음의 법칙을 따랐습니다. 행동의 고삐를 이성과 감성에 던져 맡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생각과 감정에 앞서 믿음의 행동을 결연히 감행했습니다. 믿음의 명예의 전당에 오른 믿음의 열조들의 프로파일을 들여다보십시오. 한결같이 “믿음으로”(히 11장)라는 대전제가 그들의 모든 행동을 예외 없이 이끌고 있습니다. 생각과 감정보다 믿음의 행동을 앞장 세웠습니다.

생각이 앞서기 전에, 감정이 먼저 뛰쳐나가기 전에 믿음의 행동을 선두에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믿음의 행동이 인생의 고삐를 잡게 해야 합니다. 알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느끼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이 바뀌어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원리는 따로 있습니다. 믿으면 진정으로 알게 됩니다(3절). 믿으면 그에 합당한 감정이 생겨납니다. 믿으면 상황이 바뀝니다. 믿음으로 표정을 지으십시오. 그 표정에 따른 감정이 따라 올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하십시오. 그 말이 씨가 되어 상황 속에 열매를 맺게 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행동하십시오. 그에 합당한 현실이 펼쳐질 것입니다.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결행한 일에는 늘 “하나님이”(4-5절) 그 가운데 개입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열심과 신실을 믿고 마치 그것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담대히 행하십시오. 마치 새 사람인 것처럼 새 사람에 합당한 행동을 지금 선택하십시오. 그 뒷감당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기도
“감정과 생각과 상황에 매이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거스르며 압도하는 믿음의 행동으로 복된 습관을 이루게 하옵소서.”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11-08. QT큐티체조.

간단설명. 모든 것이 헛되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논증(1:12-3:15)한 전도자는 이제 관찰을 통해 논증을 계속한다. 먼저 그는 정의의 문제를 다룬다.

성경본문, 전도서 3:16-22
한글본문.
16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17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18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19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20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21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22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영어본문.
16 And I saw something else under the sun: In the place of judgment–wickedness was there, in the place of justice–wickedness was there. 17 I thought in my heart, “God will bring to judgment both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for there will be a time for every activity, a time for every deed.” 18 I also thought, “As for men, God tests them so that they may see that they are like the animals. 19 Man’s fate is like that of the animals; the same fate awaits them both: As one dies, so dies the other. All have the same breath ; man has no advantage over the animal. Everything is meaningless. 20 All go to the same place; all come from dust, and to dust all return. 21 Who knows if the spirit of man rises upward and if the spirit of the animal goes down into the earth?” 22 So I saw that there is nothing better for a man than to enjoy his work, because that is his lot. For who can bring him to see what will happen after him?

도움말.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18절). 나는 또 마음 속으로 생각하였다. “하나님은, 사람이 짐승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사람을 시험하신다.”(새번역)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의 정의가 온전히 실현되지 않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16절)?
⬇ 아래로 인간. 전도자는 마음속에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17절)?
? 물어봐. 전도자는 자신의 믿음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어떻게 괴로워하는가(18-19절)?
! 느껴봐. 나는 눈에 보이는 현실만 보고 실족하여 넘어지는 경우는 없는가?
➡ 옆으로 실천해. 반드시 실현될 하나님의 공의를 바라보며 바뀌어야 할 삶의 자세는 무엇인가?

Meditation.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전도자는 정의가 시행되어야 할 재판정에서마저도 악이 횡행함을 보았다(16절). 절대적인 의미의 정의 실현은 이 세상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인생이 동물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은 의인이나 악인이나 죽음으로 달려가기 때문이다(18-21절). 단지 사람이 소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자신의 몫인 현재의 즐거움을 누리는 일이다(22절).
전도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만, 그것은 인간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종말의 때)에 속해 있다(17절). 하나님은 공의로우시지만, 이 땅에서 그 공의는 온전히 실행되지 않는다. 그러나 공의를 기대하며 정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헛된 일처럼 보이는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박국 선지자가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3-4). 의인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현실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귀에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바르게 사는 것이 헛된 일처럼 느껴질 때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God’s Chisel Remastered(https://skitguys.com/)

<div id=”fb-root”></div> <script>(function(d, s, id) { var js, fjs = d.getElementsByTagName(s)[0]; if (d.getElementById(id)) return; js = d.createElement(s); js.id = id; js.src = “//connect.facebook.net/ko_KR/all.js#xfbml=1″; fjs.parentNode.insertBefore(js, fjs); }(document, ‘script’, ‘facebook-jssdk’));</script>
<div class=”fb-post” data-href=”https://www.facebook.com/video.php?v=616745005033423″ data-width=”466″><div class=”fb-xfbml-parse-ignore”><a href=”https://www.facebook.com/raybaek”>백광현</a>님의 <a href=”https://www.facebook.com/video.php?v=616745005033423″>글</a></div></div>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3QCkBL2DfVg&w=560&h=315]

2014-11-07.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인간의 지혜와 쾌락 그리고 수고의 헛됨을 논한 전도자는 창조주의 신비로운 섭리에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는 것이 삶의 바른 자세라고 교훈한다.

성경본문. 전도서 3:1-15
한글본문.
1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9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2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14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15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영어본문.
1 There is a time for everything, and a season for every activity under heaven: 2 a time to be born and a time to die, a time to plant and a time to uproot, 3 a time to kill and a time to heal, a time to tear down and a time to build, 4 a time to weep and a time to laugh, a time to mourn and a time to dance, 5 a time to scatter stones and a time to gather them, a time to embrace and a time to refrain, 6 a time to search and a time to give up, a time to keep and a time to throw away, 7 a time to tear and a time to mend, a time to be silent and a time to speak, 8 a time to love and a time to hate, a time for war and a time for peace. 9 What does the worker gain from his toil? 10 I have seen the burden God has laid on men. 11 He has made everything beautiful in its time. He has also set eternity in the hearts of men; yet they cannot fathom what God has done from beginning to end. 12 I know that there is nothing better for men than to be happy and do good while they live. 13 That everyone may eat and drink, and find satisfaction in all his toil–this is the gift of God. 14 I know that everything God does will endure forever; nothing can be added to it and nothing taken from it. God does it so that men will revere him. 15 Whatever is has already been, and what will be has been before; and God will call the past to account.

도움말.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5절). 성을 허무는 것과 쌓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있는 것이…(15절). 지금 있는 것 이미 있던 것이고, 앞으로 있을 것도 이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신 일을 되풀이하신다. (새번역)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의 섭리의 특징은 무엇인가(11, 14절)?
⬇ 아래로 인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12-13절)?
? 물어봐. 전도자는 하나님의 섭리의 적용 범위를 어디까지 보았는가(1절)?
! 느껴봐. 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가운데 진행되어 감을 확신하는가?
➡ 옆으로 실천해.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최선을 다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Meditation. 오늘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 삶엔 여러 가지 긍정적인 일과 부정적인 일이 교차한다. 전도자는 삶 전체를 포괄하는 14쌍의 대조적인 일들을 제시한다(1-8절).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일만, 그것도 우리가 원하는 때에 일어나게 할 수 없다(11, 14절).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해 일어난다. 하나님만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자 하는 때에 하실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이는 체념적인 운명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리고 영원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 가운데 진행되고 있음을 믿고, 자신을 기꺼이 맡기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앞에 펼쳐지는 삶의 패들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지만, 그것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지나고 보면 버릴 패는 하나도 없었음을 깨달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믿음은 주어진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선물로 누릴 수 있게 한다(12-13절). 당신이 하나님의 섭리를 더욱 신뢰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믿음과 소망의 관계에 대한 루터의 설명과 칼빈의 설명

(아래의 글은 장기영 박사의 펫북에서 건져왔습니다.^^)

— 믿음과 소망의 관계에 대한 루터의 설명과 칼빈의 설명 —

1. 루터

“믿음은 지성 안에 있고, 소망은 의지 안에 있다… 믿음은 지성을 명령하고 인도하는… 교훈이요 지식이다. 소망은 권면이다. 소망은 마음이 용기를 얻고 굳은 결심을 하도록 북돋아 악의 와중에서도 담대하고 참을성 있고 끊기 있도록 하고 더 나은 것을 바라보게 한다. 믿음은 오류와 이단에 항거하여 투쟁하고 영들과 교리들을 심판하는 신학자이자 심판자라면, 소망은 환난과 십자가, 조급함과 슬픔과 두려움과 절망, 모욕 당한 감정에 항거하여 투쟁하는 지휘관으로서 기쁨과 용기로써 악과 투쟁한다… 믿음은 그 대상으로 진리 (truth) 를 가진다. 믿음은 확실하고 굳게 진리에 매달리라고 가르친다. 믿음은 그 대상에 대한 말씀 (the word of the object), 즉 약속을 바라본다. 소망은 선 (goodness) 을 그 목적으로 가진다. 소망은 약속의 말씀이 가리키는 대상 (the object of the word) 을 바라본다. 약속된 대상, 믿음이 받으라고 명령하는 대상을 바라본다…

정치적인 영역에서 신중성과 불굴성은 다르다… 불굴성은 역경 중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용감하게 견디며 더 나은 것을 바라보는, 마음의 확고함을 말한다. 그러나 이 불굴성이 신중성의 지도를 받지 않으면 경솔함이 되고 만다. 반대로 신중성에 불굴성을 더하지 않으면 신중성은 쓸모 없는 것이 된다. 정치 영역에서 신중성은 불굴성이 없으면 무익한 것과 같이, 신학에 있어서도 믿음은 악의 와중에서도 견디고 이끌며 정복하는 소망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반대로 불굴성은 신중성이 없이는 경솔함이 되는 것처럼, 소망 역시 믿음 없이는 성령에 관해 주제 넘는 것이 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된다. 믿음이 가르치는 진리나 그리스도의 지식이 없는 소망은 눈 멀고 경솔한 불굴성이 되고 만다. 신자가 믿음의 인도를 받는 올바른 이해와 지성을 가질 때, 믿음이 명령하고 가르치는 최선의 것을 소망할 수 있게 된다.

믿음은 믿어야 할 모든 내용을 가진 변증법과 같다. 소망은 시험을 당할 때 확고하게 말씀을 붙들도록 강권하고 설득하는 수사학과 같다. 연설자는 변증의 논리가 없이는 아무 것도 확실하게 가르칠 수 없고, 논리학자는 수사학이 없이는 그의 청중을 감동시킬 수 없다. 이처럼 변증학과 수사학은 서로 구별됨에도 불구하고 서로 떨어질 수 없도록 결합될 때에라야 비로소 설득력 있게 가르칠 수 있는 것처럼, 믿음과 소망은 서로 다르고 구별된 것이지만 서로 결합되어야 하는 것이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변증법과 수사학이 서로를 위해 일종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 같이 믿음과 소망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신학에 있어서 믿음과 소망의 관계는 철학에 있어서 지성과 의지의 관계와 같고, 정치 영역에서 신중성과 불굴성의 관계와 같고, 공중 연설에서 변증법과 수사학의 관계와 같다.

믿음은 지성이 진리로 깨우침을 받을 때 생겨난다. 소망은 권면으로 생겨난다. 권면을 통해 고난 중에서도 솟아올라 악에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행동하게 한다. 그러나 만일 믿음의 빛이 의지를 밝혀주지 않는다면, 소망만으로는 의지를 설득시킬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믿음으로 시작하고 소망으로 보존한다… 믿음은 소망에 앞서간다. 믿음은 생명의 시작이며 고난을 받기 전에 시작된다. 믿음은 십자가를 지기 전에 그리스도에 관해 배우며 그를 붙잡는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는 즉시 분쟁과 고통이 뒤따르게 된다. 이런 고난 속에서 믿음은 신학적 지혜와 신중성이라면, 소망은 신학적인 불굴성으로서… 육신적이며 영적인 모든 악을 정복하는 것이다.”
출처: Luther’s Works 27: 20-27. 루터 저, 김선회 역, 말틴 루터의 갈라디아서 강해 (1535판) 하권 (용인: 루터대학교출판부, 2003), 43-54 (번역을 부분 수정).

2. 칼빈

“하나님의 진실성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이다 … 소망은 하나님께서 진실하게 약속하셨다고 믿는 일들에 대한 기대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진실하시다고 믿으며, 소망은 하나님의 진실성이 밝히 나타내는 때를 기다린다. 믿음은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믿으며, 소망은 그가 우리에게 항상 아버지가 되실 것이라 예상한다. 믿음은 우리가 영생을 받았다고 믿으며, 소망은 영생이 언젠가는 나타나리라고 예상한다. 믿음은 소망의 토대요 소망은 믿음에 영향을 주며 힘을 준다. 하나님의 약속들을 이미 믿은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께로부터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의 약한 믿음은 오래 참는 소망과 기대에 의해서 지지되고 조성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은 무력해지고 희미하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이 우리는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바른 말이다(롬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소망은 묵묵히 주를 기다리는 동시에 믿음이 너무 서두르다가 곤두박질하여 떨어지지 않도록 제어한다. 소망은 믿음에 힘을 주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거나, 그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도록 한다. 소망은 믿음의 생기를 회복시켜 지치지 않게 한다. 소망은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믿음을 지탱해주어 도중에서, 심지어 출발점에서도 힘이 빠지지 않게 한다. 간단히 말하면, 소망은 끊임없이 믿음을 갱신하고 회복함으로써 믿음에 견인하는 힘을 주는 것이다.

믿음을 확립하기 위해서 소망의 지지가 얼마나 많이 필요한가를 더 잘 알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닥치는 시험의 형태가 얼마나 많은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첫째로, 주께서는 약속하신 일을 연기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너무도 오랫동안 불안정한 상태로 두신다. 이런 때는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합2:3)고 한 예언자의 명령을 실천하는 것이 소망의 기능이다. 어떤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치는 것을 허락하실 뿐만 아니라 분명히 노여움을 보이신다. 이런 때에 소망이 우리를 도와서 다른 예언자가 말한 대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릴’(사8:17) 필요가 훨씬 더 절실하다. 또 베드로는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라고 말한다(벧후3:3-4). 사실상 육과 세상은 꼭같은 말들을 우리에게 속삭인다. 이런 때를 위해서 우리는 길이 참는 소망으로 우리의 믿음을 보강해야 한다. 천 년을 하루같이 여길 만큼(시9-:4, 벧후3:8) 우리의 소망을 영원한 데 두어야 한다.

이러한 관계와 유사점으로 인해 성경은 간혹 믿음과 소망이란 말을 서로 바꾸어 사용한다. 베드로가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다고 가르칠 때(벧전1:5), 그는 소망에 해당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그것은 잘못이 아니다. 소망은 곧 믿음을 위한 자양분과 힘이라고 우리는 이미 가르쳤기 때문이다.

같은 편지에서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1:21)고 한 것 같이, 믿음과 소망은 간혹 결합된다. 그러나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참고 소망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나타나기까지 우리 자신의 소원을 보류한다고 하여(빌1:20) 소망에서 기대가 나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을 보면 이 모든 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다른 귀절에서도 바울은 … 같은 뜻을 말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갈5:5). 즉, 값없이 주시는 사랑에 관한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지금 소망 밑에 숨어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밝히 보여주실 때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소망의 목표와 믿음의 목표는 다르지 않다. 믿음의 유일한 목표는 하나님이 자비이다 … 주의 자비에서 모든 것을 대망하라는 것이 주의 뜻이다…”
출처: 기독교강요, III. 2. 4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