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전적 선교.

파델라~1

1970~80년대 이후 기독교에서 자유주의 및 진보 교회의 성장은 정체된 반면 복음주의 및 보수 교회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성장의 열매를 소수 목사 및 대형 교회가 독식하고, 이들이 윤리의식 부재로 끊임없이 부패 스캔들을 낳으면서 한국 기독교에 큰 짐이 되고 있다. 복음주의 진영 교회들이 오직 말뿐인 믿음만 강조하고 실천적 행동이 뒷받침되지 못한 결과다.

 고 옥한흠(1938~2010) 목사는 지난 2007년 암 투병 중 서울 상암동에 10만여명이 운집한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집회’에서 “한국 교회는 미신화되고, 개인화되고, 탈역사화되었다. 가장 큰 정치집단이 되었지만, 기득권자들의 편에만 서 있는 가장 보수적이고 반성경적인 집단이 되었다”며 한국 교회에 사망을 선고했다. 제자도 훈련을 통해 목사와 신자 교육에 가장 앞장선 그 자신의 방식도 실패했음을 사실상 자인한 것이었다.

 믿음과 행동 가운데 한쪽으로만 치우친 근본주의 신학에서 벗어나 1974년 로잔 언약 등을 통해 신앙과 삶을 동시에 추구한 중심축을 회복하려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말 복음주의 진영의 양심적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모여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을 창립한 것도 이런 노력이다.

 이런 한국 기독교에 큰 영감을 준 인물이 레네 파딜랴(82) 목사다. 그는 복음주의 진영의 지침으로 통하는 로잔 언약에 ‘사회적 책임’을 명기하도록 한 인물로, ‘통전적 선교’(Holistic Mission)의 창시자로 꼽히는 학자이기도 하다. ‘통전적 선교’는 선교를 ‘비기독교인을 기독교인으로 전도하는 것’에서 ‘전체적인 사회 구원’으로 확대한 것이다. 복음주의 기독교가 세 확장만 꾀할 뿐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방기한다는 마르크시즘과 해방신학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면서 이에 맞서 기존의 선교 개념에서 ‘사회적 복음’을 강화한 것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의 한적한 마을에서 수많은 사역자를 진정한 예수의 제자로 길러낸 카이로스 센터에서 그 대학자이자 노목사를 만났다.

 그가 태어난 곳은 에콰도르였다. 개신교에 대한 가톨릭의 종교 탄압을 피해 에콰도르로 이주한 부모를 따라간 그는 “구원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란 부모의 근본주의 신앙 속에서 자랐다. 그는 에콰도르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근처의 명문 사립대학인 휘턴칼리지에서 학·석사 과정을 마치고 국제학생운동에 가담해 라틴아메리카 책임자로서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페루, 베네수엘라 등을 다니며 학생운동을 했다. 휘턴대학 동창으로 그와 결혼한 ‘카탈리나 파딜랴’(카티)는 라틴아메리카 사역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였다. 그 미국인 부인과 4년 전 사별한 파딜랴 목사 곁엔 얼마 전 콜롬비아에서 변호사를 하던 베아트리스가 함께하고 있다. 인터뷰 도중 파딜랴 목사가 대학 시절 연애담을 들려주자 베아트리스는 노트북을 켜 파딜랴와 카티가 다정하게 찍은 옛 흑백사진을 보여주며 활짝 웃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침례교신학대학(IBBA) 교수와 부에노스아이레스 침례교회에서 목회한 파딜랴 목사는 1980년대 카이로스센터를 설립해 구체적으로 가정, 일터, 사회, 교회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적 책임과 윤리를 다할 것인지 설파하는 130여권의 책을 출간하고 남미 곳곳에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내는 이들을 길러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만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기를 원한다. 행동을 통해 그 사랑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노목사는 자비스럽고 평화로운 영성이 넘치면서도 말엔 강단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은 소리만 요란하고, 허공에 떠도는 것 같은 공허한 소리를 가장 싫어한다”고 말했다.

 “성서를 보라. 이사야서 58장, 미가서 5~6장 등 수백번씩이나 하나님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걱정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이 수백번이나 착취와 억압을 미워하고, 정의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믿음과 행위에 대해 더욱더 분명히 말했다. 그는 “행위로 인해 구원 받지 않는다고 하지만 우리는 선한 행실을 하도록 창조되었다”고 설명했다.

 “야고보는 행위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 진정한 믿음은 행위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예수께서 ‘여러분이 세상의 빛’이라고 한 것은 이를 보여주라는 예술적 표현이 아니라 직설적인 명령이다. 디모데전서에 얘기한 것처럼 ‘너의 선한 행실로 빛을 발하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너의 행실로 너를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믿음의 결과는 선한 행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선한 행실을 한다는 것은 선택적 요구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이다.”

 그는 또 “성서를 회복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수천년 전으로 돌아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성서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성서를 현장화시키는 것’이 진정한 회복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서 지식을 축적하는 도서관이나 박물관처럼 살아가는 것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내 가정, 일, 사회, 교회에 어떻게 성서의 정신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할 것인지 질문하라는 것이다. 그는 “신학적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의 가르침을 삶에서 실현하게 하는 게 신학”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한겨레>

2014-07-10. QT큐티체조.

간단설명.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세상에 대해 어리석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면서, 세상의 지혜에 근거해 사람을 자랑하지 말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에 주목할 것을 역설한다.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3:18-23
한글본문.
18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1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영어본문.
18 Do not deceive yourselves. If any one of you thinks he is wise by the standards of this age, he should become a “fool” so that he may become wise. 19 For the wisdom of this world is foolishness in God’s sight. As it is written: “He catches the wise in their craftiness”; 20 and again, “The Lord knows that the thoughts of the wise are futile.” 21 So then, no more boasting about men! All things are yours, 22 whether Paul or Apollos or Cephas or the world or life or death or the present or the future–all are yours, 23 and you are of Christ, and Christ is of God.

도움말.
만물(21절). 헬라어 ‘판타’로서 하나님의 피조세계 전체를 가리킨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19-20절)?
⬇ 아래로 인간. 세상에서 참된 지혜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18절)?
? 물어봐. 사람을 자랑하는 일이 합당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21-23절)?
! 느껴봐. 나는 세상 지혜에 어리석은 사람인가, 하나님의 지혜에 어리석은 사람인가?
➡ 옆으로 실천해. 세상의 지혜에 대해 어리석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지금 내가 결단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Meditation. 이중부정으로 강한 긍정을
이중부정은 강한 긍정이다. 하나님이 미련하게 하신 세상 지혜에 대해 스스로 어리석기로 선택할 때 진정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갖게 된다(18절). 더욱이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서 당시 교회 내에 만연했던 자기 지도자 자랑을 문제 삼았다(21절). 그리고 소유의 개념으로 그 문제를 푼다. 즉 하나님은 구속받은 교회 곧 성도들에게 그 지도자들과 이 세상의 공간과 시간과 관련된 만물을 주셨다는 것이다(22절). 충성이 능사는 아니다. 교회 지도자들을 향한 균형 잃은 충성은 오히려 교회를 나누고 허문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향한 충성만이 교회를 하나로 세운다. 지도자들에 대한 과대망상과 비현실적인 기대의 거품을 빼야 한다. 그들을 바른 자리로 되돌려야 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위하고 지도자들을 위하는 것이다.
절충할 수 없는 하나님과 세상 지혜의 대립각 속에서 당신은 어떠한 지혜에 미련한 사람이 되겠는가? 세상 지혜인가, 하나님의 지혜인가? 또한 영적 지도자들에 대한 태도는 온당한가? 거품은 없는가? 그들을 어떻게 섬기겠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07-09. QT큐티체조.

간단설명. 바울은 교회의 터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며 성도들은 그 위에 성전으로 지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 영원한 공적을 쌓아 올려 심판의 날에도 상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가르친다.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3:10-17
한글본문.
10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16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영어본문.
10 By the grace God has given me, I laid a foundation as an expert builder, and someone else is building on it. But each one should be careful how he builds. 11 For no one can lay any foundation other than the one already laid, which is Jesus Christ. 12 If any man builds on this foundation using gold, silver, costly stones, wood, hay or straw, 13 his work will be shown for what it is, because the Day will bring it to light. It will be revealed with fire, and the fire will test the quality of each man’s work. 14 If what he has built survives, he will receive his reward. 15 If it is burned up, he will suffer loss; he himself will be saved, but only as one escaping through the flames. 16 Don’t you know that you yourselves are God’s temple and that God’s Spirit lives in you? 17 If anyone destroys God’s temple, God will destroy him; for God’s temple is sacred, and you are that temple.

도움말.
성전(16절). 헬라어 ‘나오스’로서 성전지역을 의미하는 ‘히에론’과 구별된다. 곧 성소를 의미한다.
더럽히면, 멸하시리라(17절). 두 표현 모두 헬라어 ‘프떼이로’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의 성령은 어디에 계시는가(16절)?
⬇ 아래로 인간. 하나님의 성전 된 그리스도인은 어떠해야 하는가(17절)?
? 물어봐. 교회의 유일무이한 터는 무엇인가(11절)?
! 느껴봐. 나의 삶의 모든 부분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기에 합당한가?
➡ 옆으로 실천해. 아직도 여전히 하나님의 성전으로 합당하지 않은 삶의 자리는 어디이며, 어떠한 변화가 있어야 하겠는가?

Meditation. 인생 성전 건축학 개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며 그 성전의 터는 예수 그리스도다(11절).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 성전의 근본적 기초이며 그 외에 어떠한 사람과 사상도 그분을 대신할 수 없다. 그 참된 터 위에 인생 성전을 영광스럽게 건축하기 위해서는 모든 건축 재료들도 그 터와 조화되는 것들이어야 한다. 곧 삶의 모든 방식들이 세상의 풍우에 곧 시들어버릴 ‘나무, 풀, 짚’과 같은 것들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광채를 드러낼 ‘금, 은, 보석’과 같은 것들이어야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다. 결국 그 세운 것들은 시험을 받게 될 것인데(13절), 그 재료들이 심판의 불에 견디면 상을 받고, 불에 타면 해를 받게 될 것이다. 또한 스스로 인생 성전을 어떻게 여기고 취급하는지에 따라 하나님도 동일한 섭리를 그 인생 성전에 행하실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인생 성전을 오직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우고 있는가? 인생 성전을 지어 올리는 재료인 당신의 언행심사는 그 터이신 그리스도께 합당한 것들인가? 공적이 드러날 그 날이 다가오고 있다. 나의 인생 성전은 지금 어떠한 보수가 필요한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07-08. QT큐티체조.

간단설명. 바울은 시기와 분쟁 속에 있는 고린도 성도들이 여전히 영적 어린아이와 같다고 책망하면서, 자신은 복음을 심었고 아볼로는 양육의 물을 주었을 뿐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밝힌다.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3:1-9
한글본문.
1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5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영어본문.
1 Brothers, I could not address you as spiritual but as worldly–mere infants in Christ. 2 I gave you milk, not solid food, for you were not yet ready for it. Indeed, you are still not ready. 3 You are still worldly. For since there is jealousy and quarreling among you, are you not worldly? Are you not acting like mere men? 4 For when one says, “I follow Paul,” and another, “I follow Apollos,” are you not mere men? 5 What, after all, is Apollos? And what is Paul? Only servants, through whom you came to believe–as the Lord has assigned to each his task. 6 I planted the seed, Apollos watered it, but God made it grow. 7 So neither he who plants nor he who waters is anything, but only God, who makes things grow. 8 The man who plants and the man who waters have one purpose, and each will be rewarded according to his own labor. 9 For we are God’s fellow workers; you are God’s field, God’s building.

도움말.
사역자(5절). 헬라어 ‘디아코노스’로서 원래는 식탁에서 시중드는 봉사자를 뜻했다. ‘집사’(deacon) 직분의 어원이다.
심었고(6절). 복음의 메시지를 최초로 전달했다는 뜻이다.
물을 주었으되(6절). 계속해서 양육하고 교육하는 역할을 말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7절)?
⬇ 아래로 인간. 공동체 안에서 사역자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6절)?
? 물어봐. 젖과 밥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2절)?
! 느껴봐. 나는 밥과 같은 말씀을 감당할 수 있는가(2절)?
➡ 옆으로 실천해. 밥과 같은 말씀을 섭취하고 소화할 수 있는 장성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 어떠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겠는가?

Meditation. 영적 지도자의 참된 위치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시기와 분쟁이었다. 그 이면에 사람 곧 각기 다른 지도자들을 자랑하는 습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바울은 이러한 자랑이 하나님의 지혜에 입각한 신령한 태도가 아니라 사람을 따라 움직이는 육적인 행태라고 진단하고, 출생은 했지만 아직 미숙한 어린아이와 같다고 규정한다. 이어 바울은 성장을 위한 처방을 내리면서 무엇보다 영적 지도자들에 대한 바른 이해를 촉구한다. 바울은 자신을 포함한 영적 지도자들과 하나님을 대조시킨다. 심고 물 주는 역할과 자라나게 하는 역할의 차이를 통해 하나님의 절대적 위치를 부각시킨다. 영적 지도자들은 단지 하나님의 사역자들(디아코노스)일 뿐이며 하나님의 시나리오에 부수적 역할을 담당하는 조연임을 밝히고, 그들을 제자리에 놓을 것을 명한다.
성장의 열쇠 중 하나는 영적 지도자들에 대한 바른 이해와 자세다. 그들에 대한 바른 관점이 필요하다. 존경과 우상화는 다르다. 하나님의 종에게 초점을 맞추지 말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 때 교회는 하나가 된다. 당신의 초점은 하나님께 신실하게 고정되어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07-07. QT큐티체조.

간단설명. 하나님의 지혜는 오직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성령으로 인해 깨닫게 된다. 육에 속한 사람은 결코 알 수 없으며 오직 신령한 사람만이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알고 판단한다.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2:10-16
한글본문.
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영어본문.
10 but God has revealed it to us by his Spirit. The Spirit searches all things, even the deep things of God. 11 For who among men knows the thoughts of a man except the man’s spirit within him? In the same way no one knows the thoughts of God except the Spirit of God. 12 We have not received the spirit of the world but the Spirit who is from God, that we may understand what God has freely given us. 13 This is what we speak, not in words taught us by human wisdom but in words taught by the Spirit, expressing spiritual truths in spiritual words. 14 The man without the Spirit does not accept the things that come from the Spirit of God, for they are foolishness to him, and he cannot understand them, because they are spiritually discerned. 15 The spiritual man makes judgments about all things, but he himself is not subject to any man’s judgment: 16 “For who has known the mind of the Lord that he may instruct him?” But we have the mind of Christ.

도움말.
영(11절). 헬라어 ‘프뉴마’로서 하나님과 사람의 영 모두를 지칭하며, ‘생각하고 행동하는 실제적 인격’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마음(16절). 원문으로는 주님의 마음이라는 표현으로서, 구약의 ‘여호와의 영’(사 11:2)을 번역한 것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성령은 어떠한 분이신가(10절)?
⬇ 아래로 인간. 육에 속한 사람의 내적 특징은 무엇인가(14절)?
? 물어봐.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은 사람은 무엇을 알게 되는가(12절)?
! 느껴봐. 내게 육에 속한 사람의 특성들은 없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은 신령한 사람으로서 영적인 일을 분별하고 있는가?

Meditation. 위로 아래로 소통하는 영
바울은 전복되고 왜곡되어 있는 세상의 가치 체계 속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지혜와 통할 수 있는 채널은 ‘오직 성령’이라고 연거푸 강조한다(10, 12-13절).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 성령을 통할 때 영적인 블라인드 스팟(blind spot), 곧 영적 사각지대와 수신불량지역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성령 안에서만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의 선물을 알 수 있고 그 선물을 풀고 활용할 수 있는 매뉴얼을 갖게 된다(12절). 또한 성령 안에 있는 사람만이 영적 안목으로 세상을 분별하는 잣대를 가지고 모든 것을 온전히 판단할 수 있게 된다(15절). 성령과 통할 때 위로 하나님을 알고(12, 14절) 아래로 세상을 분별할 수 있다(13-14절). 이것이 그리스도의 마음(16절)을 가진 신령한 사람의 특징이다.
성령은 통하게 하시는 영이다. 하나님과 통하게 하며 세상과 통하게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고 세상을 분별하고 판단하게 한다. 당신은 과연 위와 아래로의 소통을 누리는 신령한 사람인가? 그러한 소통의 인생을 살기 위해 어떠한 값을 지불해야겠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07-06. 주일에는 읽는 QT큐티. 신앙의 문방사우 1.

간단설명. 낮은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 사람은 결코 위대해질 수 없다. - 프란시스 드 살레

한글본문.
사도행전 7:54-60
54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영어본문.
54 When they heard this, they were furious and gnashed their teeth at him. 55 But Stephen, full of the Holy Spirit, looked up to heaven and saw the glory of God, and Jesus standing at the right hand of God. 56 “Look,” he said, “I see heaven open and the Son of Man standing at the right hand of God.” 57 At this they covered their ears and, yelling at the top of their voices, they all rushed at him, 58 dragged him out of the city and began to stone him. Meanwhile, the witnesses laid their clothes at the feet of a young man named Saul. 59 While they were stoning him, Stephen prayed, “Lord Jesus, receive my spirit.” 60 Then he fell on his knees and cried out, “Lord, do not hold this sin against them.” When he had said this, he fell asleep.

Meditation. 먹, 나를 갈아서
스륵스륵. 벼루 위에 먹을 수직으로 세우고 일정한 힘을 주어 갈다 보면 우리의 정신 또한 곧추서는 것을 경험하곤 합니다. 먹의 존재 전 모습은 소나무입니다. 소나무를 태워 그을음을 만들고, 그 그을음을 아교로 뭉쳐서 먹을 만듭니다. 자신을 죽이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물건이 바로 먹입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 어렵게 만들어진 먹이 벼루 위에서 몸뚱이가 갈려 사라지는 과정은 참 허망해 보입니다.
먹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갈아서 다른 이들이 쓸 수 있도록 내어주고자 존재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필연적으로 ‘생김과 사라짐의 과정’ 속에 놓여 있는 인생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배울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마지막 모습은 벼루 위에서 갈려 사라지는 먹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베드로가 주님에 대해 증거할 때는 많은 사람이 회심하고 돌아왔지만, 스데반의 경우엔 정반대였습니다. 전무후무한 명설교 후에 돌아온 건 사람들의 분노어린 돌팔매질이었습니다.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 쉬 만들어지지 않는 탁월한 복음의 일꾼임에도 그의 마지막은 참 허망해 보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스데반의 사라짐은 영원한 무(無)가 아닙니다. 소임을 다했을 때, 그는 생명의 씨앗을 낳았고 사명은 이어졌습니다. 7장 마지막 절에 이어 8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행 8:1). 사울은 목격자입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두 눈에 주님의 빛으로 말미암은 비늘 같은 것이 씌우고 벗겨지는 과정을 통해 제2의 스데반이 태어납니다.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히 여기던 사울은 스데반의 고난을 마땅히 이어받는 사람이 됩니다.

스륵스륵. 내 인생이 갈릴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공들인 내 역할이 갈려서 사라지는 것뿐인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동양의 수묵화는 평면이 아닙니다. 입체입니다. 그림에 향기가 어우러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묵향(墨香)이라고 합니다. 묵향은 오로지 갈려서 화선지 위에 뿌려진 먹물에 의해서만 납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은은히 화선지 위로 피어오르는 묵향, 그 영광이 먹에게 있습니다. 갈려서 화선지 위에 향으로 남는 인생, 그 아니 멋지겠습니까.

기도
“하나님, 그저 갈려서 사라지는 먹과 같은 역할이라 할지라도, 묵향으로 승화하는 과정임을 알고 묵묵히 감당하는 영성을 주옵소서.”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07-05. QT큐티체조.

간단설명. 바울은 말과 지혜가 아닌 오직 십자가만을 증거했다.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을 의지했다. 이는 성도들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고자 함이다.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2:1-9
한글본문.
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6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영어본문.
1 When I came to you, brothers, I did not come with eloquence or superior wisdom as I proclaimed to you the testimony about God. 2 For I resolved to know nothing while I was with you except Jesus Christ and him crucified. 3 I came to you in weakness and fear, and with much trembling. 4 My message and my preaching were not with wise and persuasive words, but with a demonstration of the Spirit’s power, 5 so that your faith might not rest on men’s wisdom, but on God’s power. 6 We do, however, speak a message of wisdom among the mature, but not the wisdom of this age or of the rulers of this age, who are coming to nothing. 7 No, we speak of God’s secret wisdom, a wisdom that has been hidden and that God destined for our glory before time began. 8 None of the rulers of this age understood it, for if they had, they would not have crucified the Lord of glory. 9 However, as it is written: “No eye has seen, no ear has heard, no mind has conceived what God has prepared for those who love him”–

도움말.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1절). 바울이 2차 선교여행 중에 고린도를 처음 방문한 일을 말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의 지혜에는 어떤 특성이 있는가(7절)?
⬇ 아래로 인간. 바울은 무엇만을 알기로 작정했는가(2절)?
? 물어봐. 참된 믿음은 무엇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가(5절)?
! 느껴봐. 나의 믿음은 그럴듯한 말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 위에 세워져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믿음의 견고함을 이루기 위해서 점검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Meditation. 참 믿음의 공식, 십자가의 도
바울은 2차 선교여행 중 아덴에서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사역하다 실패를 경험했다(행 17:16-34).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연이어 방문한 고린도에서는 다른 방식, 곧 오직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사역했다(4절). 웅변과 설득적 수사학을 사용하지 않고 전적으로 성령의 능력에 의존하는 단순한 메시지 앞에서 오히려 아덴에서는 불가능했던 교회 공동체가 고린도에서 세워졌다.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는 현란한 수사학을 통해서가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 안에서 온전히 드러난다(7절). 명석한 논리와 탁월한 언변에 의존하는 믿음은 그보다 더 우월한 논리와 언변에 허물어진다. 오직 투박하고 직설적인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세워진 믿음만이 하나님의 능력에 기초를 둔 난공불락의 믿음이다(5절).
하나님은 인간적 달변과 선동적 설교를 통해서 당신의 지혜와 능력을 전달하지 않으신다. 오직 직선적인 십자가 복음 선포를 통해 그 지혜와 능력을 공급하신다. 이것이 믿음의 공식이다. 당신은 이 공식을 지금도 견고히 붙들고 있는가? 날이 갈수록 더욱 사모하고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