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5. QT큐티체조. 고린도전서 1Corinthians 12:22~31.

2026-06-15. QT큐티체조.
간단설명.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며 서로 사랑하라.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Corinthians 12:22~31
한글성경.
22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28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31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영어성경.
22On the contrary, those parts of the body that seem to be weaker are indispensable, 23and the parts that we think are less honorable we treat with special honor. And the parts that are unpresentable are treated with special modesty, 24while our presentable parts need no special treatment. But God has combined the members of the body and has given greater honor to the parts that lacked it, 25so that there should be no division in the body, but that its parts should have equal concern for each other. 26If one part suffers, every part suffers with it; if one part is honored, every part rejoices with it. 27Now you are the body of Christ, and each one of you is a part of it. And in the church God has appointed first of all apostles, second prophets, third teachers, then workers of miracles, also those having gifts of healing, those able to help others, those with gifts of administration, and those speaking in different kinds of tongues. 29Are all apostles? Are all prophets? Are all teachers? Do all work miracles? 30Do all have gifts of healing? Do all speak in tongues? Do all interpret? 31But eagerly desire the greater gifts. And now I will show you the most excellent way.

도움말.
다 사도이겠느냐… 통역하는 자이겠느냐(29~30절)..바울은 반복적인 의문문을 통해 모든 성도가 동일한 직분과 은사를 가질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31절)..이 구절은 12장을 마무리하며 13장 사랑장으로 이어지는 전환점으로, 바울은 은사보다 사랑이 더 큰 은사임을 강조합니다.

<큐티체조>
↑위로 하나님..하나님이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신 의도는 무엇입니까?(24~25절)
↓아래로 인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무엇을 권면합니까?(31절)
? 물어봐..바울은 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합니까?
! 느껴봐..연약한 지체를 사랑으로 섬기거나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는 데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는 바울의 권면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 옆으로 실천해..내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사랑으로 사용하지 못했던 때는 언제입니까? 주변에 위로가 필요하거나 연약한 지체를 더 큰 사랑으로 섬기기 위해 무엇을 실천하겠습니까?

Meditation
오늘 바울은 교회를 단순한 조직이나 모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설명합니다. 이 몸은 세상의 기준처럼 강한 지체가 중심이 되고 약한 지체가 주변으로 밀려나는 몸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부족해 보이는 지체에게 하나님이 더 큰 귀중함을 더하시는 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눈에 띄는 은사나 앞에 서는 역할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보이지 않고 약한 지체도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바울이 몸의 비유를 사용하는 목적은 고린도 교회 안에 있던 은사의 자랑과 비교, 열등감과 우월감을 무너뜨리고, 몸 가운데 분쟁이 없게 하며 서로 같이 돌보는 것입니다. 한 지체가 고통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런 바울의 몸 이해는 구약 율법에 그대로 나오는 개념이라기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박해하던 바울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고 말씀하신 다메섹 경험, 한 떡에 참여한 성도들이 한 몸이 된다는 성찬의 신학, 그리고 성령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한 몸으로 세워지는 경험에서 나온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 이해입니다. 또한 헬라·로마 사상 일부가 몸을 영혼보다 낮고 불완전한 것으로 보았던 것과 달리, 바울은 몸을 악한 것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성령이 거하시는 곳, 장차 부활할 것으로 이해합니다. 또한 바울은 “첫째는 사도, 둘째는 선지자, 셋째는 교사”라고 말하며 은사에도 일정한 순서가 있음을 보여 주지만, 이것은 사람의 가치 순위가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기능적 우선순위입니다. 모든 사람이 사도나 선지자나 교사일 수 없고, 모든 사람이 방언을 말하거나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교회가 하나 되는 길은 모두가 같은 은사를 갖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진 지체들이 한 몸 안에서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한 뒤 곧바로 사랑이라는 가장 좋은 길을 제시합니다. 결국 교회는 약한 지체까지 하나님이 함께 세우신 그리스도의 몸이니,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를 귀하게 여기며,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사랑으로 열매 맺도록 기쁨으로 감당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모든 지체가 하나님이 주신 서로의 은사를 귀하게 여기며, 사랑으로 서로 섬기게 하소서.
<날솟샘에서 가져와 편집했습니다>

2026-06-13. QT큐티체조. 고린도전서 1Corinthians 12:12~21.

2026-06-13.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Corinthians 12:12~21
한글성경.
12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15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8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20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영어성경.
12The body is a unit, though it is made up of many parts; and though all its parts are many, they form one body. So it is with Christ. 13For we were all baptized by one Spirit into one body-whether Jews or Greeks, slave or free-and we were all given the one Spirit to drink. 14Now the body is not made up of one part but of many. 15If the foot should say, ‘Because I am not a hand, I do not belong to the body,’ it would not for that reason cease to be part of the body. 16And if the ear should say, ‘Because I am not an eye, I do not belong to the body,’ it would not for that reason cease to be part of the body. 17If the whole body were an eye, where would the sense of hearing be? If the whole body were an ear, where would the sense of smell be? 18But in fact God has arranged the parts in the body, every one of them, just as he wanted them to be. 19If they were all one part, where would the body be? 20As it is, there are many parts, but one body. 21The eye cannot say to the hand, “I don’t need you!” And the head cannot say to the feet, “I don’t need you!”

도움말.
지체(12절)..공동체 안에서 각기 다른 역할과 기능을 맡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13절)..성령을 받은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모든 성도가 동일한 성령 안에서 하나 됨을 강조합니다.

<큐티체조>
↑위로 하나님..바울은 교회를 무엇에 비유하며, 그 교회는 어떻게 이뤄져 있다고 말합니까?(12, 14절)
↓아래로 인간..바울은 하나님께서 각 지체를 몸에 두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18절)
? 물어봐..바울은 왜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라고 강조합니까?
! 느껴봐..많은 지체가 서로를 필요로 하며, 그 지체 하나하나가 모인 공동체가 교회라는 바울의 권면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 옆으로 실천해..공동체 안에서 연약한 지체를 도왔던 때는 언제입니까? 하나님이 내게 한 몸으로 묶어 주신 공동체를 잘 세우기 위해 무엇을 실천하겠습니까?

Meditation
오늘 바울은 성령의 은사를 단순한 개인의 능력이나 교회의 기능으로 설명하지 않고, “한 몸” 안에 속한 지체들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앞에서 바울은 은사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한 성령이며, 그 목적은 공동의 유익이라고 말했는데, 오늘 본문은 그 내용을 이어받아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몸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손, 발, 눈, 귀처럼 많은 지체가 있고, 각 지체가 같은 기능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몸이 온전하게 움직이듯이, 교회 안의 다양성은 분열의 이유가 아니라 한 몸을 이루는 필수 조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두 가지 잘못된 태도, 곧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않았다”는 열등감과 “나는 너를 쓸 데가 없다”는 우월감을 동시에 경계합니다. 눈에 띄는 은사나 중심적인 역할이 없다고 해서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니며, 더 중요해 보이는 지체라도 다른 지체를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 말함으로써, 당시 사회의 민족, 신분, 계층에 따른 차별 질서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는 더 이상 존귀함이나 필요성의 차이가 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당시 로마와 헬라 사회에서도 몸의 비유는 익숙했지만, 그것은 주로 질서와 위계, 각자의 자리 유지를 강조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익숙한 비유를 성령 안에서 새롭게 바꾸어, 교회가 단순히 기능이 유지되는 조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지체들에 서로가 필요하고 존귀하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몸임을 강조합니다. 한 몸 된 공동체로 서로를 존중하고 섬기며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부름받았음을 기억하며, 다양한 지체를 세우신 하나님을 믿고, 존중과 섬김으로 한 몸 된 공동체를 세우게 하소서.
<날솟샘에서 가져와 편집했습니다>

2026-06-12. QT큐티체조. 고린도전서 1Corinthians 12:1~11.

2026-06-12.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성령이 주신 은사로 공동체를 세우라.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Corinthians 12:1~11
한글성경.
1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2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4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영어성경.
1Now about spiritual gifts, brothers, I do not want you to be ignorant. 2You know that when you were pagans, somehow or other you were influenced and led astray to mute idols. 3Therefore I tell you that no one who is speaking by the Spirit of God says, “Jesus be cursed,” and no one can say, “Jesus is Lord,” except by the Holy Spirit. 4There are different kinds of gifts, but the same Spirit. 5There are different kinds of service, but the same Lord. 6There are different kinds of working, but the same God works all of them in all men. 7Now to each one the manifestation of the Spirit is given for the common good. 8To one there is given through the Spirit the message of wisdom, to another the message of knowledge by means of the same Spirit, 9to another faith by the same Spirit, to another gifts of healing by that one Spirit, 10to another miraculous powers, to another prophecy, to another distinguishing between spirits, to another speaking in different kinds of tongues, and to still another the interpretation of tongues. 11All these are the work of one and the same Spirit, and he gives them to each one, just as he determines.

도움말.
은사(4절)..하나님께서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성도에게 거저 주시는 영적인 선물
직분(5절)..주님이 몸 된 교회의 질서를 위해 각 사람에게 맡기신 거룩한 직무와 역할
사역(6절)..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를 통해 친히 행하시는 구체적인 활동들
유익(7절)..공동체의 유익을 뜻합니다.

<큐티체조>
↑위로 하나님..바울은 은사와 직분, 사역이 다르지만 그 근원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4~6절)
↓아래로 인간..바울은 성령을 각 사람에게 나타내신 목적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7절)
? 물어봐..바울은 왜 성령께서 주신 은사와 직분, 사역이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합니까?
! 느껴봐..성령께서 성도에게 은사를 주신 것은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말씀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 옆으로 실천해..내가 공동체 안에서 은사를 비교하거나 자랑의 도구로 사용한 때는 언제입니까? 내 은사와 직분, 사역에 감사하며 공동체의 유익을 도모하기 위해 어떤 섬김을 실천하겠습니까?

Meditation
오늘 바울은 성령의 은사를 단순히 “누가 어떤 능력을 받았는가”의 문제보다 무엇이 하나님의 영에게서 온 것인가를 분별하는 기준으로 설명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과거 이방인으로 있을 때 말 못하는 우상에게 끌려다녔던 경험이 있었고, 영적인 현상처럼 보이는 것에 쉽게 휘둘릴 수 있었던 그들에게 성령의 역사를 판단하는 첫 기준을 세워 줍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예수를 저주받은 자라 하지 않고, 성령으로 아니 하고는 누구도 참되게 “예수는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곧 성령의 역사는 능력이나 신비 자체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게 하는 방향성으로 드러납니다. 이어서 바울은 은사는 여러 가지이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이나 주는 같으며, 사역은 여러 가지이나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다고 말하면서, 은사의 다양성과 하나 됨을 함께 강조합니다. 다양한 은사와 역할과 사역이 교회 안에 있지만 그 근원은 나뉘어 있지 않으며, 은사의 차이는 우열이나 경쟁의 근거가 아니라 한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시는 다양한 방식입니다. 특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은 본문의 핵심으로, 은사가 개인이 소유하고 자랑하는 능력이 아니라 성령께서 각 사람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식이며, 그 목적은 개인의 영적 과시가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문법적으로도 “신령한 것”은 단순한 은사 목록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와 영적 현상 전체를 가리키는 넓은 표현이고, “예수를 저주할 자라”는 말은 예수를 저주 아래 있는 자로 선언하는 고백에 가까우며, “예수를 주시라”는 말 역시 단순한 입술의 발음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예수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는”이라는 반복은 은사의 서열이 아니라 성령께서 서로 다른 사람에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은사를 나누어 주시며, “그의 뜻대로” 은사의 주도권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성령께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이런 내용은 바울 서신과 신약성서 전체의 흐름과도 연결되지만, 고린도전서에서 특별히 자세한 이유는 고린도 교회 안에서 은사가 공동체를 세우는 도구가 아니라 자랑과 경쟁과 혼란의 원인이 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의 성령 이해도 부활하신 예수와의 만남, 구약성서와 유대교 전통, 초기 교회의 복음 전승, 실제 선교 현장에서의 목회적 경험이 함께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서를 헬라어로 번역한 LXX에도 이미 “주의 거룩한 영”이라는 표현이 나타나지만, 신약에서는 그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교회 안에 내주하며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시는 분으로 드러납니다. 따라서 단순한 은사 목록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는 사람을 우상이나 황홀경이나 자기 과시로 끌고 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게 하며, 다양한 은사를 통해 한 몸 된 교회를 세우고 모든 것을 공동체의 유익으로 향하게 합니다. 바울에게 성령은 개인의 종교적 능력을 강화하는 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답게 세우시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오늘도 성령께서 주신 은사를 감사로 사용해, 나 자신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이루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날솟샘에서 가져와 편집했습니다>

2026-06-11. QT큐티체조. 고린도전서 1Corinthians 11:30~34.

2026-06-11.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징계 속에 담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Corinthians 11:30~34
한글성경.
30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33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영어성경.
30That is why many among you are weak and sick, and a number of you have fallen asleep. 31But if we judged ourselves, we would not come under judgment. 32When we are judged by the Lord, we are being disciplined so that we will not be condemned with the world. 33So then, my brothers, when you come together to eat, wait for each other. 34If anyone is hungry, he should eat at home, so that when you meet together it may not result in judgment. And when I come I will give further directions.

도움말.
약한 자와… 적지 아니하니(30절)..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 나타난 육체적 연약함과 질병, 그리고 죽음은 성만찬을 합당하지 않게 행한 죄의 결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로 이해됩니다.
우리가 우리를… 받지 아니하려니와(31절)..성도들이 미리 자신을 돌아보고 죄를 분별하며 회개했다면, 그러한 판단과 징계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큐티체조>
↑위로 하나님..바울은 스스로를 살피면 무엇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까?(31절)
↓아래로 인간..바울은 주께 징계를 받는 이유가 무엇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까?(32절)
? 물어봐..바울은 왜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까?
! 느껴봐..징계를 통해서라도 성도를 회복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마음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 옆으로 실천해..내가 징계의 순간에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원망했던 때는 언제입니까? 주님의 판단을 받고 징계받기 전에 요즘 내 모습을 살피고 고치기 위해 오늘 무엇을 실천하겠습니까?

Meditation
오늘 바울은 성찬의 문제를 단순한 예식의 실수나 개인 경건의 부족으로 다루지 않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벌어진 차별과 분열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판단으로 설명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주의 만찬을 먹는다고 모였지만, 실제로는 부유한 사람들이 먼저 먹고 마시며 가난한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배부르고 어떤 사람은 굶주리며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모임이 더 이상 그리스도의 몸을 드러내는 성찬의 자리가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판단을 부르는 모임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징계와 정죄의 구분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않다”고 말하면서 이것을 주님의 징계로 해석하지만, 그들을 “멸망한 자”가 아니라 “잠자는 자”라고 부릅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께 버림받아 세상과 함께 정죄받은 것이 아니라, 부활의 소망 안에 있으면서도 주님의 엄중한 다스림을 받은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이 말씀을 차별받은 가난한 사람들이 벌을 받아 죽었다는 식으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누가 죽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지만, 바울의 책망은 분명히 차별받은 자들이 아니라 차별을 만든 자들, 곧 가난한 형제를 기다리지 않고 부끄럽게 만든 자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찬을 잘못 먹으면 병들고 죽는다”는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기억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그리스도의 몸 된 형제자매를 멸시하는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결코 가볍게 지나갈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성찬은 떡과 잔을 먹는 개인적 의식만이 아니라, 한 몸 된 교회가 서로를 기다리고 존귀하게 여기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지막에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고 명령합니다. 주의 만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기념하는 교회가, 정작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를 차별하고 부끄럽게 할 때, 그 모임은 은혜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를 부르는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징계를 통해 겪는 아픔과 고난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질 때 성도는 고난의 시간에도 자신을 살피며 회개와 순종으로 응답할 수 있습니다. 그 은혜 앞에 바르게 반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징계의 순간에 주님을 오해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소서.
<날솟샘에서 가져와 편집했습니다>

2026-06-10. QT큐티체조. 고린도전서 1Corinthians 11:17~29.

2026-06-10.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예수님을 기억하는 은혜의 성만찬.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Corinthians 11:17~29
한글성경.
17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19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20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22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23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영어성경.
17In the following directives I have no praise for you, for your meetings do more harm than good. 18In the first place, I hear that when you come together as a church, there are divisions among you, and to some extent I believe it. 19No doubt there have to be differences among you to show which of you have God’s approval. 20When you come together, it is not the Lord’s Supper you eat, 21for as you eat, each of you goes ahead without waiting for anybody else. One remains hungry, another gets drunk. 22Don’t you have homes to eat and drink in? Or do you despise the church of God and humiliate those who have nothing? What shall I say to you? Shall I praise you for this? Certainly not! 23For I received from the Lord what I also passed on to you: The Lord Jesus, on the night he was betrayed, took bread, 24and when he had given thanks, he broke it and said, “This is my body, which is for you; do this in remembrance of me.” 25In the same way, after supper he took the cup, saying, “This cup is the new covenant in my blood; do this, whenever you drink it, in remembrance of me.” 26For whenever you eat this bread and drink this cup, you proclaim the Lord’s death until he comes. 27Therefore, whoever eats the bread or drinks the cup of the Lord in an unworthy manner will be guilty of sinning against the body and blood of the Lord. 28A man ought to examine himself before he eats of the bread and drinks of the cup. 29For anyone who eats and drinks without recognizing the body of the Lord eats and drinks judgment on himself.

도움말.
각각 자기의… 갖다 먹으므로(21절)..부유한 자들이 먼저 먹고 가난한 자들이 굶주리자, 바울은 이를 성만찬이 아닌 자기만을 위한 식사라며 책망합니다.
새 언약(25절)..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죽음을 통해 죄 사함과 구원을 얻게 된 은혜의 언약으로, 모든 믿는 자가 한 몸 된 공동체로 부르심받았음을 의미합니다.

<큐티체조>
↑위로 하나님..고린도교회에서 성만찬을 행할 때 어떤 문제가 있었습니까?(21절)
↓아래로 인간..바울은 성만찬에 참여하기 전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합니까?(28~29절)
? 물어봐..바울은 왜 주의 몸을 분별하지 않고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이 죄라고 경고합니까?
! 느껴봐..성만찬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자기중심적으로 참여했던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 옆으로 실천해..성만찬을 가볍게 여기거나 형식적으로 참여했던 때는 언제입니까?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다른 이와 하나 되기 위해 오늘 무엇을 실천하겠습니까?

Meditation
오늘 바울은 단순히 성만찬 예식의 형식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함께 모일 때 그 모임이 정말 그리스도의 몸을 드러내고 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앞에서 바울은 예배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욕되게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질서 있게 예배하는 문제를 다루었는데, 주의 만찬 이야기도 계속해서 “교회가 모일 때”의 질서를 다룹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나누신 마지막 만찬은 유월절 식사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고린도 교회의 주의 만찬은 그 유월절 식사를 그대로 재현하는 연례 행사가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새 언약을 교회가 모일 때마다 기억하고 선포하는 반복적 예식이었습니다. 또한 고린도 교회에서는 공동식사와 성만찬이 한 자리 안에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바울은 함께 먹는다고 해서 그것을 자동으로 주의 만찬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실제 음식과 포도주가 있는 공동식사 자리에서 어떤 사람은 배부르고 취했지만, 늦게 온 어떤 사람은 굶주리고 부끄러움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식탁이 자기 배를 채우고 가난한 자를 부끄럽게 하며 공동체를 갈라놓는 자리가 되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주의 만찬”이 아니라 “자기의 만찬”이라고 책망합니다. 바울이 성만찬을 이렇게 엄격하게 다루는 이유는 성만찬이 단순한 식사 예절이나 종교 의식이 아니라,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 자기 몸과 피를 내어 주심으로 세우신 새 언약을 기억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식탁에서 형제자매를 무시하고 가난한 자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단순한 무례가 아니라, 자기 몸을 내어 주신 주님의 뜻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일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오늘날 교회처럼 성만찬의 신학적 논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지만, 그들은 주의 만찬을 말하면서도 옆 사람을 주 안의 형제자매로 대하지 않았고, 떡과 잔이 가리키는 주님의 자기 내어주심을 공동체 안에서 배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만찬은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는 자리이며, 동시에 그 죽음으로 세워진 새 언약 공동체가 한 몸임을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말은 떡과 잔이 가리키는 예수님의 몸을 가볍게 여기는 것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결국 교회가 모인다고 해서 언제나 유익한 모임이 되는지, 성만찬을 행한다고 해서 언제나 주의 만찬이 되는지를 묻습니다. 대답은 분명합니다. 주님의 식탁은 자기만 챙기는 자리가 아니라, 주님이 자신을 내어 주신 사랑을 따라 서로를 한 몸으로 알아보는 자리이며, 성만찬은 단순히 떡과 잔을 받는 예식이 아니라 주님의 죽으심을 선포하는 공동체적 고백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희생을 기억하며, 자신의 유익이 아닌 다른 이와 나누고 하나 됨을 고백하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깊이 기억하며, 서로 나누며 사랑으로 이루는 믿음으로 성만찬에 참여하게 하소서.
<날솟샘에서 가져와 편집했습니다>

2026-06-09. QT큐티체조. 고린도전서 1Corinthians 11:11~16.

2026-06-09. QT큐티체조.
간단설명. 창조 질서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라.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Corinthians 11:11~16
한글성경.
11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3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16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영어성경.
11In the Lord, however, woman is not independent of man, nor is man independent of woman. 12For as woman came from man, so also man is born of woman. But everything comes from God. 13Judge for yourselves: Is it proper for a woman to pray to God with her head uncovered? 14Does not the very nature of things teach you that if a man has long hair, it is a disgrace to him, 15but that if a woman has long hair, it is her glory? For long hair is given to her as a covering. 16If anyone wants to be contentious about this, we have no other practice-nor do the churches of God.

도움말.
주 안에는(11절)..그리스도 안에서 남녀는 서로를 필요로 하며 돕는 상호 의존적 관계임을 뜻합니다.
남자에게 긴 머리가(14절)..당시 고린도 문화에서는 일반적인 남성이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습니다.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16절)..남녀의 질서에 대해 논쟁하려는 자들에게, 바울은 교회 보편의 질서와 전통을 따라야 함을 강조합니다.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큐티체조>
↑위로 하나님..바울은 창조 질서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합니까?(11~12절)
↓아래로 인간..바울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어떤 본성과 외적 특징으로 설명합니까?(14~15절)
? 물어봐..바울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라고 강조하면서도 남녀의 고유한 차이를 언급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느껴봐..남녀가 상호 의존적이며, 각기 다른 고유한 본성을 가졌다는 사실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 옆으로 실천해..내가 남녀의 차이를 차별이나 우열의 문제로 오해했던 때는 언제입니까?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존중하며, 가정과 공동체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협력하기 위해 오늘 무엇을 실천하겠습니까?

Meditation
오늘 바울은 앞에서 말한 머리의 질서와 창조 질서가 남성의 우월성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주 안에서의 상호 의존성”으로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바울은 남자와 여자의 머리 가림 문제를 창조 이야기와 연결하며 예배 안의 질서를 설명했습니다. 이 부분만 보면 바울이 유대적이고 가부장적인 남녀 질서를 교회 안에 그대로 가져온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곧바로 “그러나 주 안에는”이라고 말하며 그 이해를 바로잡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와 예배 안의 질서를 말했지만, 그것이 남자만 독립적으로 높고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처럼 남자도 여자를 통해 태어나며, 결국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한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서로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당시 유대 율법과 사회 관습, 고린도의 로마·헬라 문화 안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실제로 컸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 기독교 사회도 여성의 시민적·정치적 평등을 인정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현대적 남녀평등 선언처럼만 읽는 것도 무리이고, 단순한 남성 우월주의 본문으로만 읽는 것도 부족합니다. 바울은 당시의 문화와 예배 질서 안에서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여자가 예배 중에 기도하고 예언하는 것을 전제하며, 남자와 여자가 주 안에서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중요한 신학적 균형을 보여 줍니다. 이어서 당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머리 모양과 명예·수치의 감각을 예로 들며 스스로 판단하라고 권면하고, 이 문제를 개인의 취향이나 끝없는 논쟁으로 끌고 가지 말고, 사도적 전통과 하나님의 교회들이 함께 지켜 온 예배의 질서 안에서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주 안에서 동등하지만 서로 다르고, 서로 보완하며 살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창조 질서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서로 협력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바랍니다. 누구든 차별이 아닌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협력하여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날솟샘에서 가져와 편집했습니다>

2026-06-08. QT큐티체조. 고린도전서 1Corinthians 11:2~10.

2026-06-08. QT큐티체조.
간단설명. 교회의 질서와 권위에 순복하라.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Corinthians 11:2~10
한글성경.
2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3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6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7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영어성경.
2I praise you for remembering me in everything and for holding to the teachings, just as I passed them on to you. 3Now I want you to realize that the head of every man is Christ, and the head of the woman is man, and the head of Christ is God. 4Every man who prays or prophesies with his head covered dishonors his head. 5And every woman who prays or prophesies with her head uncovered dishonors her head-it is just as though her head were shaved. 6If a woman does not cover her head, she should have her hair cut off; and if it is a disgrace for a woman to have her hair cut or shaved off, she should cover her head. 7A man ought not to cover his head, since he is the image and glory of God; but the woman is the glory of man. 8For man did not come from woman, but woman from man; 9neither was man created for woman, but woman for man. 10For this reason, and because of the angels, the woman ought to have a sign of authority on her head.

도움말.
머리(3절)..권위와 계급을 함축하는 의미로 쓰입니다.
머리를 민 것(5절)..종이나 간음한 여인들이 형벌로 머리를 깎았기에 부끄러운 일로 여겨집니다.
깎거나 미는 것(6절)..간음한 여인에게 내리는 유대 형벌의 일종
여자는 천사들로… 위에 둘지니라(10절) 예배에는 천사들도 임재하므로, 여자는 창조 질서에 순종하며 남편의 권위 아래 복종함을 수건으로 나타냅니다.

<큐티체조>
↑위로 하나님..바울은 예배 중 남자와 여자의 복장에 대해 각각 어떻게 말합니까?(4~5절)
↓아래로 인간..바울은 여자들이 예배할 때 머리 위에 무엇을 두라고 말합니까?(10절)
? 물어봐..바울은 왜 예배 복장 중 머리에 쓰는 것과 관련해 남녀의 차이를 둡니까?
! 느껴봐..교회 안에서 질서와 권위를 지키기 위해 사회적, 문화적 전통을 따르라고 권면하는 바울을 보며 무엇을 느낍니까?
↔ 옆으로 실천해..내가 가정이나 교회 공동체의 질서에 순종하지 못한 때는 언제였습니까? 예배와 공동체 안에서 질서를 지키고 덕을 세우기 위해 무엇을 실천하겠습니까?

Meditation
오늘 바울은 단순히 “여자는 머리를 가리고 남자는 머리를 가리지 말라”는 복장 규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가 공동체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과 서로를 존귀하게 예배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바울은 먼저 고린도 교회가 자신이 전해 준 전통, 곧 복음적 가르침과 예배의 질서를 기억하고 지키는 것을 칭찬합니다. 그러나 곧이어 “머리”의 문제를 꺼내며,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는 관계의 질서를 설명합니다. 여기서 바울의 관심은 단순한 지배 구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남자와 여자가 예배 안에서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가에 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바울이 여자의 기도와 예언을 금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여자가 예배 안에서 기도하고 예언하는 것을 전제하면서도, 그 자유가 당시 고린도 사회가 알아듣는 명예와 수치의 언어 안에서 공동체를 욕되게 하지 않는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린도는 로마 식민도시였고, 머리 가림은 명예, 수치, 성별 구분, 혼인 상태, 사회적 품위, 종교적 예절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남자의 경우 로마식 제의에서는 머리를 가리고 기도하는 것이 경건과 권위의 표시일 수 있었지만, 바울은 교회 안에서 그런 로마식 종교 권위나 신분 과시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여자의 경우 머리를 드러내는 것은 당시 문화 속에서 부끄러움이나 품위 상실로 여겨질 수 있었기에, 바울은 머리를 가리지 않는 것을 머리를 민 것과 같다고 강하게 표현합니다. 다만 이것을 간음한 여인에게 내리는 유대 형벌로서의 삭발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고대 사회 전반에서 여인의 깎인 머리가 수치와 불명예의 상징으로 여겨졌다는 배경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또한 이 본문은 오늘날 천주교의 미사보 전통과도 어느 정도 연결되지만, 바울의 원래 관심은 여성이 예배당에서 천을 써야 하는가가 아니라, 예배 중 기도하고 예언하는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질서와 존중을 드러내야 하는가였습니다. 결국 바울은 고린도 문화의 머리 가림 풍습을 그대로 복사하지도, 완전히 무시하지도 않고, 당시 사람들이 알아듣는 문화적 상징을 사용하여 그리스도 중심의 예배 질서로 다시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단순한 복장 규정이 아니라,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가 아니라, 예배 안에서 자유와 질서, 남녀의 구별과 상호 존중, 문화적 상징과 복음적 재해석이 만나는 본문입니다. 오늘 하루, 말씀에 순종하며 교회의 질서와 유익을 위해 내가 실천할 일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이 세우신 질서와 권위에 순종하며, 교회의 덕을 세우게 하소서.
<날솟샘에서 가져와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