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18. QT큐티체조. 성금요일.

간단설명. 금요일은 예수님이 잡히시고 재판을 받으시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되신 고난의 날이다.

성경본문. 누가복음 23:44-49
한글본문.
44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45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47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48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49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영어본문.
44 It was now about the sixth hour, and darkness came over the whole land until the ninth hour, 45 for the sun stopped shining. And the curtain of the temple was torn in two. 46 Jesus called out with a loud voice, “Father, into your hands I commit my spirit.” When he had said this, he breathed his last. 47 The centurion, seeing what had happened, praised God and said, “Surely this was a righteous man.” 48 When all the people who had gathered to witness this sight saw what took place, they beat their breasts and went away. 49 But all those who knew him, including the women who had followed him from Galilee, stood at a distance, watching these things.

도우말.
휘장(45절).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가 있는 지성소와 밖의 성소를 나누는 경계 역할을 하던 커튼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고난당하실 때, 어떤 특이 현상이 일어났는가(44절)?
⬇ 아래로 인간. 예수님의 죽음 앞에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47-49절)?
? 물어봐.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45절)?
! 느껴봐. 나는 주님의 보혈을 의지해 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더 헌신하기로 다짐해야 할 일은 없는가?

Meditation. 새로운 살 길
예수님은 유대 시간으로 제3시(오전 9시) 경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제9시(오후 3시) 경에 운명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계신 6시간 중에 절반인 제6시(정오)부터 제9시까지의 3시간 동안엔 갑자기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했다(44절). 이는 자연적인 일식현상이 아니라, 심판과 슬픔을 상징하는 어두움이다. 그 어둠은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그 죄를 대신 지신 예수님께 임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무죄하신 구세주의 대속적 죽음에 대한 온 우주의 슬픔을 상징한다.
어두움과 함께 지성소와 성소를 가르는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지는 일이 일어났다(45절). 이는 예수님의 속죄사역에 의해 죄인 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살 길이 열린 것을 상징한다(히 10:19-20). 예수님은 이 모든 구원사역을 이루시고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며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46절). 당신은 주님의 보혈을 의지해 속죄의 은총을 입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고 있는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04-17. QT큐티체조. 고난주간입니다. 매번 반복되는 인재를 보며, 어른들은 왜 이렇게 실수를 자꾸자꾸 할까요!

간단설명. 예수님은 잡하시기 전 날 밤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을 예고하신다.

성경본문. 누가복음 22:31-34
한글본문.
31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영어본문.
31 “Simon, Simon, Satan has asked to sift you as wheat. 32 But I have prayed for you, Simon, that your faith may not fail. And when you have turned back, strengthen your brothers.” 33 But he replied, “Lord, I am ready to go with you to prison and to death.” 34 Jesus answered, “I tell you, Peter, before the rooster crows today, you will deny three times that you know me.”

도움말.
세 번(34절). 3은 완전수로, 베드로의 완전하고도 철저한 부인을 의미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은 베드로에 대해 어떤 약속과 사명을 주셨는가(32절)?
⬇ 아래로 인간. 베드로는 자신의 믿음에 대해 어떻게 장담했는가(33절)?
? 물어봐. 사탄의 역사로 인해 베드로는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는가(34절)?
! 느껴봐. 나는 내 힘과 결심만으로 믿음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살지는 않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가 더욱 간절히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Meditation. 사탄은 밀 까부르듯 하나
죽을지언정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예고하셨고(34절), 결국 그대로 되고 말았다. 베드로가 이처럼 자기의 결심과는 반대로 주님을 부인하게 된 것은 사탄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그를 청구했기 때문이다(31절). ‘밀 까부른다’는 말은 ‘체에 넣고 흔들다’는 말이다. 사탄은 베드로를 체에 넣고 흔들 듯이 흔들어 그를 실족하게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다시 돌이켜 신앙을 회복하고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기 때문이다(32절).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것을 회개하고 초대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되어 그처럼 사탄의 공격을 받은 형제들의 믿음을 굳게 하는 사명을 감당했다(32절, 벧전 5:8-11). 신앙생활은 인간적인 결심이나 장담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된다. 당신이 더욱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감당해 나가야 할 일은 무엇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 어찌 할 바를 모르겠고, 자꾸자꾸 눈물만 납니다. 푸르디 푸른 생명들은데,

당신은 신뢰받고 있는가?

Trust-Like-Know
그리스의 시라쿠사에 나오는 이야기에 핀티아스와 그의 친구인 다몬의 이야기가 나온다. 시라쿠사는 비누, 시멘트, 올리브유, 포도주의 제조 및 어업의 중심지로 제염업이 성한 곳이자 아폴로 신전과 극장이 많이 있었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유적이 많기에 관광지로서도 유명한 곳이었다. 기원전4세기경 이 시라쿠사를 다스리고 있던 디오니소스1세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핀티아스에게 음모죄를 적용하여 사형선고를 내린다. 사형선고가 내려진 핀티아스는 개인 일을 처리하려 하니 하루 동안만 고향에 다녀올 수 있게 해 달라고 왕에게 부탁한다. 고향에 다녀온 후에 사형을 받겠다는 이야기였다. 왕이 황당해하자 핀티아스의 친구인 다몬이 나서서 날짜 안에 핀티아스가 돌아오지 않으면 자신이 대신 사형을 받겠다고 나서며 자기 발로 감옥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히려 호탕한 디오니소스 왕이 조마조마하게 핀티아스를 기다리는 형국이 되었다. 마침 핀티아스가 기한 내에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자 이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우정에 반한 디오니소스 왕은 핀티아스를 사면하고 자기도 그들 두 사람 간의 우정에 끼어 달라고 통사정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신에게는 이렇게 신뢰할 만한 친구가 있는가? 더 나아가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신뢰할 만한 사람인가? 이 질문 앞에서 자신을 향한 정직한 답을 구하며 신뢰에 대한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사실3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신뢰는 당신 자신에게서 시작된다. 신뢰받을만한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당신이 먼저 자신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당신이 자신에게 철저한 사람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한 약속은 다른 사람과의 약속 이전에 당신 자신과의 약속이다. 다른 사람에게 믿을 만한 사람으로 비추어지기 전에 먼저 당신이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가꾸어 가야 한다. 당신이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
둘째, 신뢰는 당신의 부분이 아닌 당신 전체를 드러낸다. 당신이 어떤 사람에 대하여 신뢰하지 못한다고 말할 때 어떤 한 부분을 보면서 그 사람에 대해서 그 부분만은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한 부분 때문에 신뢰성이 모자라기에 그 사람에 대해서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을 신뢰한다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어떠한 면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모든 면에서 신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뢰는 삶의 작은 부분으로부터 구축되는 것이다. 삶의 작은 영역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신뢰를 쌓을 수 없다. 지극히 작은 부분에서도 늘 신실하게 최선을 다함으로 신뢰를 쌓는 사람이 되라.
셋째, 신뢰는 당신이 쌓아가는 것이다. 신뢰는 예금계좌와 같다는 말이 있다. 신뢰는 내가 보여준 행동으로 쌓아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불명예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주위에서는2가지의 반응이 나올 수 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혹은 “그 사람이? 그럴 리 없어!” 라는 반응이다. 일상의 삶 속에서 당신이 신뢰를 쌓아가는 삶을 살았다면 당신의 부족으로 인해 드러나는 실수를 향하여 사람들은 후자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당신이 쌓아가는 신뢰의 예금계좌를 마이너스 통장으로 만들지 마라.

얼마 전2013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여론 조사는 한국교회의 낮은 신뢰는 만성적이고 구조적 문제(19.4%) 이며, 윤리와 도덕 실천을 통한 신뢰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한국교회의 신뢰도 추락을 나의 신뢰도의 추락으로 인식해야 한다. 나 자신의 삶 속에 만성적이면서도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하며, 윤리와 도덕 실천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신뢰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되고, 작은 부분을 보며 전체를 평가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이 쌓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 사실을 인식하며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가꾸어간다면 개인은 물론 한국교회 전체는 신뢰할 만한 공동체로 더욱 새로워질 것이다.
<디모데 성경연구원/ 사람을 세우는 칼럼 263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04-16. QT큐티체조. 고난주간입니다.

간단설명. 수요일에 예수님은 베다니로 오셔서 잠시 휴식을 취하셨다. 이 날은 침묵의 날이라고 불린다. 목요일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고, 그들의 발을 씻기신 후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기도하며 십자가를 준비하신 준비의 날이다.

성경본문. 누가복음 22:24-30
한글본문.
24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8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영어본문.
24 Also a dispute arose among them as to which of them was considered to be greatest. 25 Jesus said to them, “The kings of the Gentiles lord it over them; and those who exercise authority over them call themselves Benefactors. 26 But you are not to be like that. Instead, the greatest among you should be like the youngest, and the one who rules like the one who serves. 27 For who is greater, the one who is at the table or the one who serves? Is it not the one who is at the table? But I am among you as one who serves. 28 You are those who have stood by me in my trials. 29 And I confer on you a kingdom, just as my Father conferred one on me, 30 so that you may eat and drink at my table in my kingdom and sit on thrones, judging the twelve tribes of Israel.

도움말.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27절). 유대 식사 풍습에 주인이나 귀빈은 기대어 거의 눕는 자세로 앉아서 먹고, 종들은 서서 시중을 들었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크다고 하셨는가(26절)?
⬇ 아래로 인간.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고난의 길을 갈 때 약속된 영광은 무엇인가(29-30절)?
? 물어봐.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스스로 어떤 존재가 되셨는가(27절)?
! 느껴봐. 나는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는 마음이 더 크지는 않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가 주님의 마음을 품고 더 겸손히 낮아져서 섬겨야 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Meditation. 하늘에서 큰 자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 담당하는 ‘인자’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내일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러나 그 순간까지도 제자들은 ‘우리 중에 누가 크냐?’는 문제로 서로 다투고 있었다(24절).
그런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지위는 세상 나라와 같지 않음을 교훈하신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인간이 되어 오셔서 죽기까지 낮아지시며, 겸손히 섬김으로 그들을 구원하셨다. 제자들 역시 서로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섬겨야 한다(25-27절).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높고 큰 사람은 이 땅에서 가장 낮아져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섬기는 사람이다(마 20:26-27). 예수님은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써 모범을 보이셨다(요 13:1-17). 그리고 하나님이 그 나라를 예수님께 맡기셨듯이, 이제 예수님도 그 나라를 제자들에게 맡기시겠다고 선언하신다(28-29절). 이 땅에서 섬기는 사람은 그 나라에서 다스리는 사람이 된다. 당신이 주님의 마음을 품고 나아가 겸손히 섬겨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
<young2080애서 가져왔습니다>

2014-04-15. QT큐티체조. 고난주간입니다.

간단설명. 화요일은 예수님이 논쟁을 일으키려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질문에 대해 답변하신 변론의 날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영접하지는 않고 계속해서 논쟁만 걸어오며 배척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버린 돌과 머릿돌 비유를 통해 경고하신다.

성경본문. 누가복음 20:17-19
한글본문.
17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18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19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영어본문.
17 Jesus looked directly at them and asked, “Then what is the meaning of that which is written: ” ‘The stone the builders rejected has become the capstone’? 18 Everyone who falls on that stone will be broken to pieces, but he on whom it falls will be crushed.” 19 The teachers of the law and the chief priests looked for a way to arrest him immediately, because they knew he had spoken this parable against them. But they were afraid of the people.

도움말.
백성을 두려워하더라(19절).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은 첫째, 백성들이 예수님을 큰 선지자로 알고 있다는 사실(눅 7:16)과 둘째, 백성들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크게 기뻐하고 찬양했다는 점(눅 19:37)과 셋째, 그 이전에도 백성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던 일(요 6:15)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은 어떤 분으로 묘사되고 있는가(17절)?
⬇ 아래로 인간. 끝까지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심판이 경고되고 있는가(18절)?
? 물어봐.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잡아들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19절)?
! 느껴봐. 내 삶은 예수님을 머릿돌과 기초로 삼아 세워져가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 삶 가운데 더욱 주님을 머릿돌로 삼아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Meditation. 버린 돌과 머릿돌
돌을 보는 전문가들인 건축자들이 모퉁잇돌로 쓸 만한 귀한 돌을 알아보지 못하고, 쓸모없는 돌이라고 버린다면 얼마나 어이없는 실수겠는가? 그런데 종교 전문가들을 자처하던 유대교 지도자들이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하고 있다(17a). 그들은 로마 제국으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 다윗 시대와 같은 황금기를 다시 한번 열어줄 수 있는 정치적이고 현세적인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기대에 비추어볼 때, 예수님은 쓸모없는 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 그들이 진정으로 해방되어야 할 대상은 로마가 아니라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하는 죄였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머릿돌로 삼아 그를 믿어 죄로부터 구원받는 백성들의 모임인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17b). 그러나 끝까지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그 돌에 부딪혀 산산이 깨지고 말 것이다(18절). 심판의 경고를 듣고도 유대교 지도자들은 회개하기보다는 더욱 예수님을 배척하며 잡아들이고자 했다(19절). 당신에게 예수님은 어떤 존재인가? 당신은 그분을 머릿돌 삼아 견고하게 세워져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2014-04-14. QT큐티체조. 고난주간.

간단설명. 성 고난주간(Holy Passion Week)의 첫째 날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개선의 날이고, 둘째 날인 월요일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권위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권위의 날이다.

성경본문. 누가복음 19:45-48
한글본문.
45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47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48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영어본문.
45 Then he entered the temple area and began driving out those who were selling. 46 “It is written,” he said to them, ” ‘My house will be a house of prayer’; but you have made it ‘a den of robbers.'” 47 Every day he was teaching at the temple. But the chief priests, the teachers of the law and the leaders among the people were trying to kill him. 48 Yet they could not find any way to do it, because all the people hung on his words.

도움말.
장사하는 자들(45절). 환전상들은 성전세를 내기 위해 로마 화폐를 유대 화폐로 바꾸어가는 사람들에게 고리의 환전료를 챙겼다. 또한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제물로 드릴 때, 제사장들은 자신들과 담합한 상인들에게서 사온 제물만 받아주었다. 환전상들과 상인들은 제사장들에게 이익의 일부를 상납하는 대신 독점적으로 폭리를 취했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예수님이 성전에서 행하신 일은 무엇인가(45-46절)?
⬇ 아래로 인간.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어떻게 대응했는가(47절)?
? 물어봐. 백성들은 예수님께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48절)?
! 느껴봐. 내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늘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내 안에 주님 보시기에 더욱 정결케 되어야 할 부분은 없는가?

Meditation. 성전을 정결케 하신 예수님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주님은 바로 그 다음날인 월요일에 성전을 찾으셨다(45절). 예수님이 첫째로 관심을 둔 곳은 성전이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이 기대하시는 그런 성전이 아니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속죄의 제사가 드려지며 기도하는 곳으로서의 본 모습은 퇴색되고 탐욕과 비리가 어우러진 곳이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은 떠나 있었다. 성전이 이렇게 타락하게 된 것은 환전상 및 상인들과 제사장들이 서로 결탁해 신성해야 할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46절). 예수님은 이를 보고 격분하셔서 성전에서 환전상과 상인들을 내쫓으시고,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성전의 참의미를 가르치셨다. 이에 반감을 품은 타락한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다(47절).
우리 영혼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고전 3:16). 성전 된 당신의 영혼에는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울려 퍼지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 욕심과 불의의 소리가 가득히 울리고 있는가? 성전 된 당신의 영혼에 더욱 정결케 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성령의 열매에 관한 세 가지 진리]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갈5:22-23)”

1. 열매는 초자연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첫 번째 진리는, 성령의 열매는 그 기원이 초자연적이라는 것이다… 성령께서 이 열매들을 맺게 하시는 장본이시다. 이 열매들은 성령께서 충만케 하시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그분께서 자라게 하시고 거두시는 수확이다.

이 사실은 본문에서 ‘성령의 열매’가 ‘육체의 일’과 의도적으로 대조를 이루는 것에서 더 분명해진다… ‘육체의 일’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자원에만 의지해서 자연적으로 행하는 일들을 가리킨다면, ‘성령의 열매’는 우리가 성령께 반응할 때 그분이 우리 안에서 초자연적으로 – 왜냐하면 우리의 자연적인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에 – 만들어 내시는 특질들로 이루어진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힘만 의지한다면 우리에게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과는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술취함과 방탕함’ 따위들이다 (갈5:19,21). 반면에 성령의 초자연적인 열매는 그와 정반대의 것들로서 ‘충성과 온유와 절제’ 등이다. 우리가 자신의 힘만 의지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반역하고 ‘우상 숭배와 술수’에 빠지고 말 것이다 (20절). 그러나 성령은 우리를 ‘사랑과 희락과 화평’으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육체의 일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인 반면, 이와 반대되는 성령의 열매는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이다.

타고난 본성에 따른 우리의 모든 관계는 뒤틀려져 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우상으로 돌이킨 자들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사이가 뒤틀려져서 불화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자신을 절제하며 살기보다는 탐닉에 빠져 살아간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 또 자신을 확실하게 절제하며 사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초자연적인 역사로서 바로 ‘성령의 열매’이다.

참으로 그리스도인들의 특질들의 총화인 이 열매들은 성령의 충만한 내주하심의 가장 훌륭한 증거이다. 왜냐하면 이 증거는 확실하게 객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안에서 하나님의 영이 깊이 역사하시는 진정한 증거는 감정적인 경험이나 굉장한 표적이 아니라 도덕적인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적 특질들이다. 굉장한 경험을 자랑하지만 사랑, 희락, 화평, 자비, 절제 등이 결여된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하자. 나는 우리 모두가 그의 주장에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음을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 자신의 경험이나 은사가 무엇이든지간에 그 품성을 통해 주 예수의 향기를 느끼게 해주는 다른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하자. 우리 모두는 분명히 그 사람과 함께 있기를 더 원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와 성령이 거하시는 전을 보기 때문이다.”

2. 초자연적 기원을 가졌으나, 자연적인 방법을 통하여 성장한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성령의 열매’라고 부름으로써, 그것의 초자연적인 기원 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성장 역시 가르치고 있다. 이 두 진리를 균형 있게 유지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거룩한 삶이 성령의 산물이라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러한 삶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역할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령이 그러한 삶을 그분의 ‘열매’로 생산하신다는 사실은, 동시에 그러한 성장을 위해 어떤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며, 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갈라디아서 5장에서는 바울이 ‘열매’에 대해 썼다면, 6장에서는 모든 열매의 수확을 궁극적으로 결정하게 될 ‘심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의 말을 인용해보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6:7-8).

근본적인 원리는 다음의 말씀에 나타나 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든 행위에서 사용하시는 확고한 원리이자, 하나님의 일관성을 알려주시는 법칙으로서 물질적인 영역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영역, 자연과 인간의 품성 등에 모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언제나, 어떤 예외도 없이 우리는 우리가 심는 것을 거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신실하심으로 인해 우리는 무엇을 심을 것인지를 결정함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거두게 될 것인지를 미리 결정하게 된다. 만일 귀리를 추수하기 원하는 농부라면 귀리를 심어야 할 것이다… 만일 성령이 우리의 삶에 좋은 열매를 맺으시게 하려면, 우리는 좋은 씨를 심어야 할 것이다…

사도가 ‘심는 것’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우리의 생각과 습관, 생활 방식, 삶의 방향과 삶의 훈련 등으로 구성된 전체적인 삶의 패턴이다… 즉 우리 삶의 전체적인 흐름 및 그보다는 작지만 매일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무수한 사항들에 관해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런 것들을 선택하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언제나 계속 심고 심고 또 심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서신서에서 여러 다양한 비유를 사용하여 이 주제를 설명한다. 어떤 곳에서는 옷으로 설명하고 (우리가 벗는 것과 입는 것), 어떤 곳에서는 운동 선수의 분투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어떤 것은 피하고 어떤 것은 얻기 위해 좇아가는 것). 어떤 곳에서는 삶과 죽음의 문제로 설명하고 (우리의 죄악된 욕망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야 하고, 그 대신 성령의 인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야 하는 것), 어떤 곳에서는 빚을 갚는 일로 설명한다 (우리는 육신이 아닌 성령에 빚진 자라는 것). 이 모든 비유들이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할 열매로서 성화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제대로 된 수확을 거두기 원한다면… 제대로 씨를 뿌려야 한다는 것이다.

… 육체를 위해 심으면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된다고 사도는 말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성령을 위해 심으면 ‘영생’을 거두게 된다… 따라서 이생에서 우리의 도덕적 품성은 물론, 내생에서 우리의 궁극적인 운명까지도 지금 우리가 무엇을 심는지에 달려 있다.”

3. 열매를 맺는 데는 점진적인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사도가 사용하는 이 ‘열매’의 비유에서 배워야 할 세 번째 교훈은… 하나님이 무르익게 하시는 과정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곡식에 대한 한 비유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막4:28)…

… 이러한 강조는 우리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죄악된 삶을 살도록 조장하거나, 게으름을 권장하거나, 우리의 기대치를 낮추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우리는 열매 맺는 일에서 더 적극적으로 성령과 협력하게 되고, 좋은 결실을 수확하기 위해 심는 것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이고, 공적이고 개인적인 경건의 삶의 습관을 위해 자신을 더 훈련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은혜의 수단들을 통해 우리는 은혜 안에서 자라고 성령의 열매가 우리 안에 풍성히 무르익게 될 것이다.”

적용

“우리는 성령의 열매들에 대한 세 가지 진리를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그 각각의 진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은 그 기원이 초자연적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겸손과 믿음이 모두 필요하다. 다시 말해 우리 스스로는 ‘육체’의 토양에서 이러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 및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 이 성령의 열매를 자라게 하실 수 있으심을 믿는 믿음이 둘 다 필요하다…

둘째, 그리스도를 닮는 열매를 맺기 위해 우리 측면에서는 결실의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 오직 심은 것만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지런히 심어야 하며, 생각하는 것, 사는 것 둘 다를 위한 훈련된 습관을 개발해야 한다… 우리가 뿌리는 씨를 관리할 때 성령께서 열매를 책임지신다.

셋째, 그리스도를 닮는 열매를 맺는 것은 그 과정이 점진적이기 때문에, 그 열매를 맺기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이 인내를 ‘조급한 인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인내는 자기 만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살펴본 것처럼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후에는 ‘주님을 기다리며’ 열매가 익을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마침내 추수할 때가 오고, 이생에서는 잘 익은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내생에서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은 모습을 거두게 될 것이다.”

출처: 존 스토트, 『성령 세례와 충만』 (서울: IVF, 2002), p. 93-106.
<장기영 교수님의 펫북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