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27. QT큐티체조.

간단설명.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주님께로 돌아가면 그 마음을 덮고 있던 수건이 벗겨져 그분의 영광을 볼 수 있으며,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가르친다.

성경본문. 고린도후서 3:12-18
한글본문.
12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4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영어본문.
12 Therefore, since we have such a hope, we are very bold. 13 We are not like Moses, who would put a veil over his face to keep the Israelites from gazing at it while the radiance was fading away. 14 But their minds were made dull, for to this day the same veil remains when the old covenant is read. It has not been removed, because only in Christ is it taken away. 15 Even to this day when Moses is read, a veil covers their hearts. 16 But whenever anyone turns to the Lord, the veil is taken away. 17 Now the Lord is the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freedom. 18 And we, who with unveiled faces all reflect the Lord’s glory, are being transformed into his likeness with ever-increasing glory, which comes from the Lord, who is the Spirit.

도움말.
담대히 말하노니(12절). 원문에서는 ‘담대함을 사용하나니’라고 되어 있으며, 자유시민의 권리 중 대중 앞에서 연설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그 마음을 덮었도다(15절). 여전히 율법에 붙잡혀 있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목도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주님의 영 곧 성령의 임재 속에는 어떠한 역사가 일어나는가(17절)?
⬇ 아래로 인간. 마음에 수건이 덮여 있는 사람의 내면적 특성은 무엇인가(14절)?
? 물어봐. 마음을 덮은 수건은 어떻게 벗겨질 수 있는가(14, 16절)?
! 느껴봐. 나에게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못하도록 가리고 있는 수건은 없는가?
➡ 옆으로 실천해. 주님의 영광을 날마다 더욱 풍성히 목도하며 살아가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무엇인가?

Meditation. 마음의 수건을 벗을 때
바울은 모세가 그의 얼굴 광채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건을 덮었다고 해석하면서(13절), 이 행위를 옛 언약의 영광이 사라지는 증거로 보았다. 그에 반하여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새 언약의 영광은 찬란하게 빛나지만 사람의 마음에 덮인 수건이 그 영광을 가리고 있어 목도하지 못한다고 밝힌다(14절).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나아갈 때 그 수건을 벗은 것처럼, 그리스도께 돌아가면 그 마음의 수건은 벗겨지고 그 영광을 볼 것이며(16절) 주님의 영이 그에게 자유를 주리라고 힘 있게 말한다(17절). 바울은 주님의 영 곧 성령이 주시는 자유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free from)뿐만 아니라,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하는 자유(free to)도 포괄함을 강조하며 주님의 영광에 주목할 것을 촉구한다(18절).
최선을 잡으려면 차선은 내려놓아야 한다. 새 언약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붙들기 위해서는 옛 언약인 율법으로부터 자유해야 한다. 주님의 영광에 주목할 때 그 영광이 우리에게 전염되어 진정한 변화가 촉발된다. 당신의 이목을 사로잡는 가장 큰 영광은 무엇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08-26. QT큐티체조.

간단설명.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 자체가 자신의 추천서이며 편지라고 밝히며, 그 이유로서 자신이 전한 복음이 그들의 삶을 통해 드러나고 있음을 지적한다.

성경본문. 고린도후서 3:1-11
한글본문.
1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2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4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6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영어본문.
1 Are we beginning to commend ourselves again? Or do we need, like some people, letters of recommendation to you or from you? 2 You yourselves are our letter, written on our hearts, known and read by everybody. 3 You show that you are a letter from Christ, the result of our ministry, written not with ink but with the Spirit of the living God, not on tablets of stone but on tablets of human hearts. 4 Such confidence as this is ours through Christ before God. 5 Not that we are competent in ourselves to claim anything for ourselves, but our competence comes from God. 6 He has made us competent as ministers of a new covenant–not of the letter but of the Spirit; for the letter kills, but the Spirit gives life. 7 Now if the ministry that brought death, which was engraved in letters on stone, came with glory, so that the Israelites could not look steadily at the face of Moses because of its glory, fading though it was, 8 will not the ministry of the Spirit be even more glorious? 9 If the ministry that condemns men is glorious, how much more glorious is the ministry that brings righteousness! 10 For what was glorious has no glory now in comparison with the surpassing glory. 11 And if what was fading away came with glory, how much greater is the glory of that which lasts!

도움말.
추천서(1절). 당시 순회 설교자들은 교회로부터 받은 추천서를 가지고 다녔다. 그것을 증빙 자료로 삼아 머물 곳과 음식과 설교의 기회를 제공받았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은 우리 안에서 어떠한 일을 하시는가(3절)?
⬇ 아래로 인간. 바울은 진정한 만족이 어디로부터 온다고 말하는가(5절)?
? 물어봐. 없어질 것과 길이 있을 것은 각각 무엇을 의미할까(11절)?
! 느껴봐. 요즘 나의 마음판에 각인되고 있는 것은 어떠한 것들인가?
➡ 옆으로 실천해.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나는 오늘 누구에게 그리스도의 마음과 사랑을 전달해야 하겠는가?

Meditation. 삶으로 쓰는 그리스도의 편지
바울은 사람의 손으로 쓴 추천서를 갖고 다니면서 참 사도라고 주장하며 자신을 공박하는 이들을 향해서 마침내 자신이 가진 추천서를 내민다. 그 추천서는 다름 아닌 그에게서 복음을 받고 그 복음을 삶으로 드러내며 사는 성도들이다(2절). 그가 내놓는 추천서의 특징은 “돌판에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마음판에 쓴 것”이라는 점이다(3절). 복음이 진정으로 마음에 각인되면 필연 삶으로 드러난다. 그러한 삶은 편지처럼 모든 이들이 볼 수 있게 하고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 또한 바울은 스스로를 새 언약의 일꾼으로 자처하면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옛 언약을 선포한 모세가 받은 영광보다 영의 직분과 의의 직분으로 받을 영광이 더 크다는 것을 강조하며 성도들로 하여금 영의 직분을 사모하게 한다.
고린도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마음판에 새겼다. 마치 음악 CD나 영상 DVD처럼 모든 언행은 그 마음판에 각인된 것이 재생되는 것이다. 지금 내 마음판에 새겨지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삶으로 나타나는 내 모습은 복음에 합당한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08-25. QT큐티체조.

간단설명. 바울은 복음 전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향기이며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사망을 확인하게 하는 사망의 냄새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으로 이끄는 생명의 냄새를 나타낸다고 말한다.

성경본문. 고린도후서 2:12-17
한글본문.
12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14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7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영어본문. 12 Now when I went to Troas to preach the gospel of Christ and found that the Lord had opened a door for me, 13 I still had no peace of mind, because I did not find my brother Titus there. So I said good-by to them and went on to Macedonia. 14 But thanks be to God, who always leads us in triumphal procession in Christ and through us spreads everywhere the fragrance of the knowledge of him. 15 For we are to God the aroma of Christ among those who are being saved and those who are perishing. 16 To the one we are the smell of death; to the other, the fragrance of life. And who is equal to such a task? 17 Unlike so many, we do not peddle the word of God for profit. On the contrary, in Christ we speak before God with sincerity, like men sent from God.

도움말.
혼잡하게(17절). 원어로 ‘카페류오’로서 물건을 팔 때 이익을 위해 포도주 원액에 물을 타는 행위를 뜻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 교훈으로 복음의 내용을 왜곡한다는 의미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하나님은 복음 전하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섭리를 행하시는가(14절)?
⬇ 아래로 인간. 복음 전하는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15절)?
? 물어봐.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란 무슨 의미일까(16절)?
! 느껴봐. 나의 삶의 자리에는 생명의 향기만이 풍겨나는가?
➡ 옆으로 실천해. 나의 언행심사가 생명의 향기라는 역할에 걸맞게 변화되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Meditation. 삶으로 발하는 그리스도의 향기
고대 근동에서 전쟁에 승리한 군대는 향기를 피우며 개선했다. 그 냄새는 승리를 거둔 사람들에게는 생명을 확인하고 보장해 주는 것이지만, 패배하여 끌려오는 편에는 죽음의 운명을 선고하고 확인하는 것이다(16절). 동일한 향기가 전혀 다른 판결을 내어놓는다. 바울은 이 개념을 빌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정체와 역할을 선명히 부각시킨다. 복음의 메시지가 말과 삶으로 드러내는 자리마다 그것을 듣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지, 생명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케 한다는 것이다. 그 향기의 실체가 바로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 사명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16절).
삶의 향기를 발하라. 매사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라. 그 삶의 향기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아! 나는 산 자로구나’ 고백하며 확신에 거하게 하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아! 내가 죽은 자로구나’ 인정하며 생명의 주께 나아오게 하라. 당신은 지금 어떤 향기를 내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기 위해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08-24. 주일에는 읽는 QT큐티.

간단설명. 씹어 삼키는 것과 맛을 음미하는 것이 같을 수는 없다. - 어느 식당 벽에서

한글본문. 요한복음 2:7-11
7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영어본문.
7 Jesus said to the servants, “Fill the jars with water”; so they filled them to the brim. 8 Then he told them, “Now draw some out and take it to the master of the banquet.” They did so, 9 and the master of the banquet tasted the water that had been turned into wine. He did not realize where it had come from, though the servants who had drawn the water knew. Then he called the bridegroom aside 10 and said, “Everyone brings out the choice wine first and then the cheaper wine after the guests have had too much to drink; but you have saved the best till now.” 11 This, the first of his miraculous signs, Jesus performed in Cana of Galilee. He thus revealed his glory, and his disciples put their faith in him.

Meditation. 입 안 가득 전해오는 풍부한 바디감
오랜 경험이 있는 바리스타는 커피 한 모금에서 신맛, 쓴맛, 단맛의 비율을 찾아내고, 로스팅 정도와 커피 원산지가 어디인지 정확히 일별해 낸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구분해낼 수 있는지 바리스타에게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은 단순했습니다. 커피를 즐거워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초보자들이 배운 기술을 한껏 발휘해보겠다고 덤비는데, 그렇게 되면 커피는 놀라서 도망가 버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랑하고 즐거워하면 커피가 스스로를 알려준다고 합니다. 도사같은 말이었지만, “커피가 나를 좋아해요”라는 그의 마지막 말에서 대가(大家)의 경지를 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은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포도주를 만드신 일입니다. 인류를 구원할 공생애 스타트를 알리는 기적이면 사람들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뭔가 근사하고 어마어마한 이적이어야 할 텐데, 고작 기적을 발휘하시어 맛있는 포도주를 만들어내시다니. 소박하다 못해 엉뚱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참 멋지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사역의 성격을 보게 됩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일컬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혹평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제대로 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에는 억지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즐거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성분이 어떠한지, 쓴지, 신지, 단지 정확히 알아보시고, 고난에 얼마나 볶인 인생인지 일별해 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원산지와 맛과 로스팅에 꼭 맞는 커피를 타내셨습니다.

우리의 봉사도 이러해야 합니다. 초보 바리스타가 커피 볶아대듯이 들들 볶아대며 자기 기술을 뽐내는 봉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복음의 맛을 음미하는 봉사, 사람들과 즐거워하는 것이면 족합니다. 기술을 뽐내는 섬김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다 보면 삶을 통해 복음이 드러나게 되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손은 어떤 맛을 내며 섬기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시원케 해드리는 바디감 풍부한 아이스커피 한 잔 어떻습니까?
에서 가져왔습니다.

 

2014-08-23. QT큐티체조.

간단설명. 바울은 자신의 방문이 고린도 교회에 근심이 될 것을 알고 눈물과 사랑의 편지로 대신하겠다고 밝히면서, 교회 안에 성도 사이에 생기는 근심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용서와 위로를 권고한다.

성경본문. 고린도후서 2:1-11
한글본문.
1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2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내가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 3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4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5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6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7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8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9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10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11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영어본문.
1 So I made up my mind that I would not make another painful visit to you. 2 For if I grieve you, who is left to make me glad but you whom I have grieved? 3 I wrote as I did so that when I came I should not be distressed by those who ought to make me rejoice. I had confidence in all of you, that you would all share my joy. 4 For I wrote you out of great distress and anguish of heart and with many tears, not to grieve you but to let you know the depth of my love for you. 5 If anyone has caused grief, he has not so much grieved me as he has grieved all of you, to some extent–not to put it too severely. 6 The punishment inflicted on him by the majority is sufficient for him. 7 Now instead, you ought to forgive and comfort him, so that he will not be overwhelmed by excessive sorrow. 8 I urge you, therefore, to reaffirm your love for him. 9 The reason I wrote you was to see if you would stand the test and be obedient in everything. 10 If you forgive anyone, I also forgive him. And what I have forgiven–if there was anything to forgive–I have forgiven in the sight of Christ for your sake, 11 in order that Satan might not outwit us. For we are not unaware of his schemes.

도움말.
근심(1절 등). 본 단락에서 명사형(뤼페)과 동사형(뤼페오)으로 아홉 번이나 쓰였다. 원문에는 여덟 번 사용되었다(우리말 성경에는 5절에서 중복 해석했다).

큐티체조.
⬆ 위로 하나님. 그리스도 앞에서는 어떤 역사가 이루어지는가(10절)?
⬇ 아래로 인간. 성도는 근심을 끼친 사람들을 벌한 후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는가(7-8절)?
? 물어봐. 고린도 교회와 성도에 대한 바울의 사랑의 증거는 무엇인가(4절)?
! 느껴봐. 나는 용서와 위로와 사랑이 사탄의 계책을 깨뜨리는 효과적인 무기라는 사실을 확고히 믿는가?
➡ 옆으로 실천해. 오늘 내가 그리스도 앞에서 용서와 위로와 사랑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할 지체는 누구인가?

Meditation. 근심을 치유하는 묘약, 사랑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루어진 일전의 방문으로 인해 바울과 고린도 성도들 사이에 상처와 근심거리들이 생겨났다. 바울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방문하려 했으나, 이것이 오히려 서로의 상처와 근심을 가중시켜서(3절) 양자 모두 사탄의 계책에 빠지게 할 수 있음을 간파하고(11절) 많은 눈물을 담아 쓴 편지만을 보낸다(4절). 그리고 그 편지 속에 근심으로 곪아가고 있는 관계망을 치유할 수 있는 사랑(4, 8절)의 묘약을 전달한다. 특히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켜 징계 받은 사람의 마음속 근심에까지 그 사랑의 묘약을 풀어 녹여내어 공동체로 하여금 그리스도 앞에 바로 설 것을 권고한다.
공동체 안에서 생겨나는 모든 상처와 그로 인해 깊어가는 근심을 해소하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다. 지식도, 회의도, 권징도 그 자체로 상처와 근심을 치유할 수는 없다.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가장 좋은 길은 분명 사랑이다(고전 13:13). 당신은 공동체 안에서 이러한 사랑의 묘약을 풀어 녹여내고 있는가? 공동체 안에 그 사랑의 약효가 필요한 곳은 어디인가?
<young2080에서 가져왔습니다>

 

정답과 일치하는 선택.

1
가족 캠핑을 마치고 한 가정이 어두운 도로를 조심하며 커브를 꺾는 순간, 중앙선을 마주 달려오던 음주운전자의 차가 그의 가족을 덮쳤다. 조금 전까지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남편과 아이 셋만 남긴 채 사랑하는 아내와 셋째 아이, 그리고 어머니와는 먼 이별을 고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이란 저서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제럴드 싯처의 삶의 이야기이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삶의 깊은 상실 앞에서 정말 정직하게 반응하며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울었던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다.

“우리는 어둠을 뒤로 하고 도망칠 수도 있고, 아니면 어둠 속으로 뛰어들어가 상실에 따른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우리는 자기 연민에 빠져 살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이들과 마음을 함께하며 그들의 고통을 나 자신의 고통처럼 보듬어 줄 수도 있다. 슬픔으로부터 도망치느라 어딘가에 중독될 수도 있고, 아니면 슬픔과 벗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당한 기만의 상처들을 끌어안고 지낼 수도 있고, 아니면, 비록 그럴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해도,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 수도 있다. 악으로 악을 되갚을 수도 있고, 아니면 선으로 악을 이길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두드러지게 달라진다. 선택의 힘은 참으로 놀랍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간성에 존엄성이 더해지기도 하고, 상황을 딛고 일어설 줄 아는 능력을 얻게 되며, 희생자의 처지에서 자유롭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선택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선택을 내릴 능력도 있고 또 바른 선택을 내려야 하는 당위성도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우리가 내리는 선택은 종종 번민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쪽으로 이루어진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잔인하게도 삶은 때때로 좋고 나쁜 상황과 환경을 넘어 우리로 하여금 평소에 붙잡고 있던 정답을 경험적으로 확신하도록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한다. 이때 우리는 번민과 갈등에 사로잡혀 괴로움의 한가운데 서게 될 때가 있다. 마치 제럴드 싯처의 삶에 찾아온 상실의 순간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선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갑작스럽게 다가온 삶의 깊은 상실감 앞에서 이론적 확신으로만 간직하고 있었던 것을 향한 바르고 건강한 선택을 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정답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이 그 정답으로부터 먼 선택을 하도록 만들거나, 처한 상황이 애써 그 정답을 외면하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비록 잘못된 선택을 한다 할지라도 그 선택에 대한 변명과 명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남편을 비롯한 집안의 세 남자가 죽은 삶에 찾아온 깊은 상실감을 맞이하며 선택의 갈림길에 선 한 여인을 소개한다. 룻의 이야기다. 삶에 찾아온 위기 속에서 그녀는 시어머니를 따르기로 선택한다. 자신 민족과 신앙을 향하여 돌아가는 길이 아닌, 왕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발걸음을 선택한다. 하나님의 왕 되심을 거부하며 스스로 왕이 되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이스라엘의 영적으로 척박한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자신보다 더 깊은 상실감에 젖어 있는 노모와 함께하는 여정을 기꺼이 선택하며 이방 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왕 되심을 삶으로 고백하며 어떠한 어려움과 역경이 다가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절대 굴복하지 않고 베들레헴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룻에게는 시어머니를 따르지 않아도 내세울 수 있는 나름대로 변명과 명분이 있었지만, 인생의 깊은 상실감 앞에서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란 고백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왕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먼 미래를 생각할 여력도 없었다. “이렇게 선택하면 무엇인가 보상이 따르겠지?”라는 생각조차도 그녀의 상황 속에서는 사치였을 정도로 상실의 한복판에 있었지만, 있는 그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붙잡고 그것을 선택했던 것이다. 다윗의 증조모가 되는 계획은 그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깊은 상실의 자리에서 모든 갈등과 고통을 극복하며 정답을 선택한 그녀를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는 당신을 왕으로 고백하는 연약한 여인을 왕의 가문으로 세우는 불후의 명작 완성하는 것으로 움직였다.
수 없이 반복해야 하는 선택의 연속 가운데서 당신은 당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답에 일치하는 선택을 하고 있는가? 선택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이 보실 때에 옳은 것, 기뻐하시는 것, 선하신 것인가? 라는 부분이다. 선택은 언제나 상황을 근거로 해서는 안 된다. 선택은 진리를 붙잡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삶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감정적 거리와 우리가 붙잡아야 할 진리와의 거리를 끊임없이 좁혀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할 때 우리의 삶에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것의 일치(엡 4:13)와, 더 나아가서 알고 있는 정답과 우리의 선택이 일치되는 하나님 자녀다움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World Teach. 사람을 세우는 사람 에서 가져왔습니다>